중도·좌우파·아랍계 정당까지…이스라엘 '무지개 연정' 출범

'순번제 총리' 합의…극우 정당 대표 베네트가 첫 주자 맡아
베네트 "이란 핵합의 복원은 실수"…네타냐후 "곧 돌아올 것"
2년간 총선 4번 치르며 분열 극심…연정내 이념 조정이 관건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가 야권 정당들의 협공으로 12년 만에 권좌에서 내려오게 됐다. 이번 연합정부에는 건국 이후 처음으로 이슬람주의 아랍계 정당까지 참여했다. 새 연정은 중도 성향 정당 예시 아티드를 중심으로 우파와 좌파, 아랍계 등 8개 정당이 참여해 ‘무지개 연정’으로 불린다. 연정 내부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어떻게 끌어안느냐에 따라 향후 정권의 성패가 갈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는 13일(현지시간) 특별총회에서 반(反)네타냐후 기치 아래 예시 아티드를 중심으로 모인 야권 정당 8곳의 새 연립정부안을 승인했다. 이날 신임투표에서 총 120명의 의원 가운데 60명이 연정을 지지했고, 59명은 반대표를 던졌다. 연정에 동참한 이슬람주의 정당 라암에서 1명의 의원이 지지를 철회하며 기권표를 던졌지만, 의결정족수는 가까스로 충족했다.

차기 정부의 신임 총리는 극우 정당 야미나의 나프탈리 베네트 대표가 맡게 됐다. ‘순번제 총리’ 합의에 따라 그의 임기는 2023년 8월까지다. 미국계 유대인인 베네트 대표는 독실한 유대교 신자다. 영국 런던의 유대계 매체인 주이시 크로니클은 “이스라엘 역사상 처음으로 키파(남성 유대교도가 신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늘에 머리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쓰는 챙 없는 모자)를 쓴 총리가 탄생했다”고 보도했다.

베네트 대표는 1999년 사이오트라는 정보기술(IT) 기업을 설립한 기업인 출신이기도 하다. 그는 2005년 사이오트를 매각해 1억4500만달러(약 1619억원)에 달하는 차익을 거둔 뒤 2006년 네타냐후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리쿠르, 주이시홈 등 우파·극우 성향의 정당을 거치며 입지를 다졌다. 이번 연정의 설계자인 예시 아티드의 야이르 라피드 대표는 외무장관을 맡다가 2년 후 총리직을 승계할 예정이다.

새 연정에선 총 27개 정부 부처 가운데 내무부 경제부 교육부 혁신과학부 사회평등부 에너지부 이민통합부 환경보호부 교통부 등 9개 부처에 여성 장관이 임명된다. 이는 역대 최다 기록이다. 이스라엘 연정에 이슬람주의 아랍계 정당이 합세한 것도 사상 처음이다.

2009년 이후 지금까지 12년간 집권한 네타냐후는 야당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다. 네타냐후는 “야당이 되는 것이 숙명이라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이 위험한 정부를 뒤집고 나라를 우리의 길로 다시 이끌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 곧 돌아올 것”이라며 재기를 다짐했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수뢰 배임 등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총리직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짐과 동시에 형사 처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스라엘은 극심한 정치적 분열 속에 지난 2년간 네 차례나 총선을 치렀다. 2019년 4월과 9월 총선 후에는 정당 간 이견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하지 못했다. 지난해 3월 총선이 끝난 뒤에는 네타냐후의 리쿠드당과 중도 성향의 청백당이 연정을 구성했지만 사사건건 반목했다. 결국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갈등이 폭발하며 연정 출범 7개월 만에 파국을 맞았다.

이번 무지개 연정 출범으로 다섯 번째 조기 총선은 피했지만, 워낙 이념적 지향점이 다양한 정당이 모여 있어 언제든 정국 파행이 재발할 수 있다는 전망도 계속 제기된다. 특히 극우 성향의 베네트 신임 총리가 이슬람주의 정당 라암과 동상이몽을 거듭할 경우 정국이 불안해질 것이란 우려가 많다. 그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이날 미국을 겨냥해 “이란과의 핵 합의 복원은 실수”라고 비판하는 등 대(對)이란 강경 기조를 예고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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