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단체 조직원 사이에서 인기아이템으로 쓰였던 암호 메신저 어플이 알고보니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만든 함정수사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현지시간) 미국과 유럽 사법당국이 800명이 넘는 조직범죄 관련 용의자를 체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ANOM(아놈)'이라는 암호 메신저어플을 소개했다. FBI가 이끄는 국제 사법기관 연합체는 '트로이 방패 작전' 이름으로 대대적인 범죄조직 소탕 작전에 나섰다.

아놈은 일반 앱스토어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해당 어플이 설치된 특수 전화기를 암거래 시장에서 구매해야 했다. 거기다 기존 사용자의 추천이 없으면 어플 사용 자체가 불가능했다. 사용료도 6개월간 2000달러(약 223만 원)에 달했다.

WSJ는 "메시지를 암호화할 수 있는 데다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만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범죄조직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소탕작전에 참여했던 유럽연합(EU) 경찰기구인 유로폴은 "100여개국에서 마약밀매 등을 일삼는 300개 이상의 범죄조직이 이 어플에 걸려들었다"고 설명했다. 총 사용자 수는 1만2000여명에 달했다.

FBI와 국제 사법기관들은 암호화된 메시지를 가로채 해독할 수 있는 기술을 아놈에 설치해놨다. 이 같은 사실을 알 수 없었던 국제 범죄조직원들은 이 어플을 사용해 갖가지 범죄를 모의했다.

한 조직원은 프랑스의 외교행낭을 이용해 마약을 운반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가 사법당국에 적발됐다. 에콰도르의 참치 회사는 참치 대신 마약을 아시아와 유럽에 공급했다. 스웨덴에선 10건 이상의 살인 계획을 사전에 적발할 수 있었다.

국제 사법기관들은 지난 48시간 동안에만 전세계 9000개 이상의 사법기관이 개입해 700여곳을 일제 수색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16개국에서 800명이 넘는 조직범죄 관련 용의자를 체포했다. 코카인 8t, 대마초 22t 등 마약류와 총기 250대, 고급차량 55대, 각종 통화 4800만달러 이상 등을 압수했다. FBI는 나머지 용의자들도 조만간 추가로 체포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