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 7개국(G7)이 글로벌 법인세 최저 세율을 15%로 설정하는 등 다국적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을 제한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세계 각국이 다국적 기업 유치를 위해 수십 년간 벌여온 ‘법인세 인하 경쟁’에 마침표를 찍기로 한 것이다. 해외 사업장을 둔 한국 대기업은 세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G7 재무장관들은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회담한 뒤 낸 공동성명에서 세계 각국이 법인세율을 15% 이상으로 유지하고, 다국적 기업이 사업을 하는 나라에 ‘초과이익(이익 10% 초과분)’ 중 20% 이상을 세금으로 내도록 하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G7이 합의한 법인세 최저 세율 15%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법인세를 합산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A국의 중앙정부 법인세가 10%, 지방정부 법인세가 2%이면 이 나라의 법인세율은 12%이며 G7 합의가 관철된다면 이를 15%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초과이익의 20%를 사업장이 있는 나라에 세금으로 내야 하는 다국적 기업의 기준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이번 G7 합의는 각국의 법인세 인하 경쟁을 제한하고 정부 세수를 늘리기 위한 조치다.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등 디지털기업뿐 아니라 해외 사업장을 둔 모든 업종의 다국적 기업이 영향을 받게 된다.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는 미국이 기업 이탈을 막기 위해 글로벌 법인세 최저 세율 도입 등을 적극 추진했다.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재정이 악화한 각국의 세수 확보 필요성이 커진 점도 합의 도출에 영향을 미쳤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이번 합의가 기업에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고 세계 경제가 번성하도록 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재무장관은 “기업들이 더는 불투명한 조세 구조를 가진 나라로 이익을 교묘하게 옮기는 방식으로 납세 의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도입까진 난항…135개국 동의 얻어야
"韓 대기업 부담 소폭 증가"

주요 7개국(G7) 합의가 국제 조세체계로 확정되기까지는 난관이 적지 않다. 당장 주요 20개국(G20)을 포함해 글로벌 법인세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135개국의 동의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실제 12.5%의 낮은 법인세율을 무기로 다국적 기업의 본사를 대거 유치하며 성장해온 아일랜드는 법인세율을 15% 이상으로 올리는 데 부정적이다.

개발도상국들의 반대도 ‘넘어야 할 산’으로 꼽힌다. 정부 관계자는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이 정해지면 개발도상국이 낮은 세율을 내세워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경제 발전의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사라진다”며 “개도국의 동의가 중요한 만큼 G7 등 선진국 간 협의가 갖는 의미가 다른 국제 협약에 비해 낮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합의에 대해 개도국이 다국적 기업을 유치해 성장할 수 있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과세를 어떻게 할지도 논란이다. 예컨대 다국적 기업 이익 중 실제 사업장이 있는 나라에서 과세할 수 있는 범위와 다국적 기업의 구체적 기준 등을 두고 각국의 셈법이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다음달 9~10일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 회의가 새로운 국제 조세체계 마련을 위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는 신중한 반응이다. 관련 논의가 G20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G7이 입장을 정했다고 그대로 관철된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한국 대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은 소폭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법인세율이 15%를 밑도는 국가에 사업장과 현지법인을 두고 있는 국내 대기업은 향후 법인세를 더 내야 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로선 세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법인세율 15% 이하 국가에서 사업을 하는 대기업에 국세청이 추가로 과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단순히 세수가 늘어난다고 좋아할 수만은 없다”며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까지 면밀히 분석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노경목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