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이 중국에 세 차례 전화 통화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미국 측이 격에 맞지 않는 상대에게 대화를 요구했다고 반발했다. 분쟁지역인 남중국해 등에서 양국 간 군사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자존심 싸움'까지 벌어지는 양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오스틴 장관은 쉬치량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에게 통화를 오쳥했으나 세 번 거부당했다. 쉬 부주석은 25명으로 구성된 중국 최고 권력집단인 중앙정치국 위원이다.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중국은 오스틴 장관의 대화 상대방은 쉬 부주석이 아니라 웨이핑허 국방부 장관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외교적 관례를 무시했기 때문에 통화를 거절한 것이라며 대화 거부의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웨이 장관은 행정부인 국무원 산하 국방부의 수장이며, 공산당 기구로 따지면 200여명의 중앙위원회 위원이다. 권력 서열로 볼 때 쉬 부주석이 웨이 장관의 상관이다.
쉬치량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쉬치량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중국군 소식통은 SCMP에 "쉬 부주석이나 웨이 장관 모두 시진핑 국가주석에 보고하는 위치이지만 외교 의전상 오스틴 장관의 파트너는 웨이 부장"이라며 "미 국방부는 오스틴 장관의 전임자 시절부터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 자문역인 스인훙 인민대 교수는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한계선을 위협받고 있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이번 미국의 요청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해 거절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SCMP는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이 오스틴 장관의 요청이 외교 의전을 고의로 무시했다기보다는 양국 간 대화 채널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탓으로 본다고 보도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인 1월 초부터 중국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국방부 장관은 내각 서열 4위이며, 2018년에는 짐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이 쉬 부주석을 만난 적도 있다는 면에서 미국의 요청이 무리가 아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펑 난징대 국제관계연구원장은 직함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며 "양국은 협상 상대방의 공식 직함이 아니라 그들의 실질적인 권한에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양국 국방부 장관의 통화는 무산됐지만, 두 나라가 군사적 충돌은 자제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스 교수는 "지난 4월말 이후 양국 고위층에서 동시에 최전선 부대에 남중국해 내 충돌을 자제할 것을 명령했다는 일부 징후들이 있다"고 말했다. 미 해군이 아직까지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지 않은 것도 그런 징후로 제시했다.

중국군 소식통도 "수년간 남중국해에서 맞닥뜨린 경험으로 양국 군은 서로의 존재에 익숙하다"며 "전함과 전투기는 어떠한 사고도 발생하지 않도록 작전을 펼치는 동안 안전거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