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혼게이자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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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연속 방위비를 사상 최대 규모로 늘려온 일본이 지난 45년간 유지해 온 상한선에 구애받지 않고 방위비를 늘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 우리나라와 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이 예상된다.

기시 노부오 일본 방위상(사진)은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기존 방침과 발본적으로 다른 속도로 방위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이 같이 말했다.

기시 방위상은 "GDP와 비교해 (방위비를) 산출할 게 아니라 일본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경비를 확실히 짜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정상회담에서 "일본의 방위력를 강화한다"고 발표한 공동성명에 대응하는 조치라는 뜻도 밝혔다.

일본은 1976년 미키 다케오 내각이 '방위비를 국민총생산(GNP)의 1% 이내로 제한한다'고 국무회의(각의)에서 결정한 이후 방위비를 GDP나 GNP 대비 1% 이내로 억제하는 방침을 유지해 왔다.

1987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내각이 이 방침을 절폐하면서 1987~1989년 방위비가 GNP의 1%를 넘기도 했지만 이후 정권은 줄곧 방위비 억제 방침을 지켜왔다.

1990년 이후 일본 방위비가 GDP 대비 1%를 넘은 것은 2010년이 유일했다. 이 때도 방위비를 급격히 늘려서가 아니라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일본 GDP가 급감했기 때문에 상한을 넘은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신형 미사일과 차세대 전투기 개발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올해까지 9년 연속 방위예산을 늘려왔다. 지난 7년간은 사상 최대 규모를 매년 경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위비는 GDP의 1% 이내로 관리해 왔다.

올해 방위비는 작년보다 0.5% 늘어난 5조3422억엔(약 55조3361억원)이다. 지난 18일 발표된 2020회계연도 GDP 대비 0.997%다.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일본 GDP가 감소하면 1990년대 이후 처음으로 1%를 넘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펴낸 방위백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일본의 방위비는 484억달러(약 54조6436억원)으로 549억달러인 우리나라보다 적었다. 중국은 3363억달러였다. 일본이 GDP의 1% 이상으로 방위비를 늘리면 우리나라 예산을 넘어설 가능성도 커진다.

GDP 대비 상한선에 구애받지 않고 방위비를 늘리려는 계획은 기시 방위상의 친형인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정권의 숙원이기도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이 방위비를 상한선 이상으로 늘리면 일본 안전보장정책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이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기시 방위상은 중국의 해양진출 가속화에 대응해 오키나와와 센가쿠(중국명 다오위다오) 열도 주변의 방위력를 강화하고 우주와 사이버 공격 등 신영역에 대처할 것이라고 방위비 증액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자위대의 공백지역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며 나가사키현에 위치한 낙도방위전문 '수륙기동단'의 부대수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기술혁신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진보하면서 싸우는 방식이 달라졌다"며 우주, 사이버, 전자파 등 새로운 영역을 강화하겠다고도 말했다.

"(적 미사일을) 요격하는 능력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국민의 생명를 지킬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이 있다"며 적기지 공격능력의 보유 여부를 계속해서 검토하겠다는 의향도 밝혔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등 유사시에 대비해 미일방위협력 지침을 개정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시점에서는 예상하고 있지 않지만 정세 변화에 대응해 적절히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정부의 방위력 증액 방침을 우려했다. 이노우에 에리나 일본종합연구소 연구원은 "정부가 돌연 방위비 확대를 주장해도 여론은 선뜻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며 "안보상의 긴장이 높아졌다 하더라도 왜 증액하지 않으면 안되는지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