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물가 급등 속에서도 통화 팽창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는 가운데 월스트리트의 거물급 투자자들이 거품 붕괴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역대 최대 규모의 ‘돈 풀기’ 부작용이 조만간 가시화할 것이란 경고다. Fed는 작년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직후부터 매달 1200억달러어치 미 국채 등을 매입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의 레이 달리오 창업자 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 행사에서 “미국 경제에 너무 많은 돈이 풀리면서 거품이 생기고 있다”며 “물가 상승 및 달러 가치 하락을 동시에 유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생산성을 높여야 경제 과열을 막을 수 있는데 지금 속도로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헤지펀드의 전설로 꼽혀온 스탠리 프리먼 드러켄밀러 뒤켄패밀리오피스 회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경제가 호황인데도 Fed가 금리를 낮게 유지하고 수조달러의 채권을 계속 사겠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그는 “모든 자산에 거품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광기에 빠진 시장의 거품이 폭발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통화와 재정정책이 요즘처럼 실물 경제와 엇박자를 내는 사례는 역사상 찾아볼 수 없다”며 “과도한 부채와 적자를 부르는 정책을 지속하면 달러가 15년 안에 기축통화 지위를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날 Fed의 핵심 인사들은 여러 행사에 참석해 통화 긴축을 서두르지 않을 것임을 강력 시사했다. 최근의 물가 상승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고용 회복 속도가 여전히 더디다는 관측에서다.

Fed 의장 및 재무장관 후보로 거론됐던 레이얼 브레이너드 이사는 미국경제기자협회 토론회에서 “경제 전망이 밝지만 불확실성 역시 남아 있다”며 “고용과 물가 수준이 우리의 정책 목표에서 여전히 멀다”고 강조했다. 물가 목표의 경우 지속적으로 빠른 속도로 올라갈 것이란 광범위한 확신이 동반돼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물가 상승은 기저 효과 등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어서 통화정책 기조를 바꿀 필요가 없다”는 제롬 파월 의장과 같은 입장이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 총재는 “바이러스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분명한 징후가 나타날 때까지 현 정책을 이어가야 한다”며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Fed 내에서 매파(통화 긴축 선호)로 꼽히는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연방은행 총재마저 야후파이낸스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물가상승률은 2%를 넘겠지만 내년엔 다시 떨어질 것”이라며 “경제지표가 지금보다 훨씬 진전돼야 정책 기조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