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백지수표 회사’로 불리는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열풍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스팩을 통해 상장한 주요 기업의 주가가 최고점보다 평균 39%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 금융정보회사 리피니티브의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초부터 스팩을 통해 상장한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회사 41개를 분석한 결과를 전했다. 이에 따르면 주가가 최고치 대비 5% 이내로 유지되고 있는 곳은 3개사에 불과했다. 18개 회사는 주가가 정점에서 50% 이상 떨어졌다.

스팩은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뒤 유망 기업을 찾아내 인수합병(M&A)하는 서류상 회사다. 기업의 우회 상장 통로로 떠오르면서 유명 인사들도 스팩 투자에 잇따라 나서는 등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최근 1년간 글로벌 증시에서 신규 상장으로 조달된 2300억달러 가운데 절반가량이 스팩에 몰릴 정도였다.

하지만 과열 우려 등으로 감독당국이 스팩 기업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기관투자가들이 투자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시바람 라즈고팔 컬럼비아대 교수는 “스팩 광풍에 실적이 좋지 못한 회사들까지 잇따라 상장했다”며 시장에 거품이 끼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스팩을 통해 뉴욕증시에 입성한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XL플리트의 주가는 상장 직후 70%가량 상승해 35달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최근엔 7달러 이하에서 거래되고 있다. 트럭 부품 제조업체인 힐리온 역시 스팩을 통해 상장한 뒤 주가가 5배 이상 올랐지만 현재는 최고점 대비 80% 넘게 떨어졌다.

전기트럭 업체 니콜라, 배터리 개발회사 퀀텀스케이프 등은 공매도 세력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해 1월 이후 스팩을 통해 상장한 기업 가운데 8곳은 현재 주가가 10달러 이하에 머물러 있다. 주택 모기지 업체인 유나이티드홀세일모기지, 헬스케어 회사 멀티플랜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업체는 각각 억만장자 투자자인 알렉 고레스와 전 씨티그룹 부사장 출신 마이클 클라인이 투자한 스팩을 통해 상장했다.

안정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