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지 지난 1일로 석 달이 됐습니다.

지난해 11월 치러진 총선에서 심각한 부정이 발생했지만, 정부가 이를 해결하지 못해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미얀마 군부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시민은 이를 군부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쿠데타 사흘째인 4일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하고 있습니다.

쿠데타 이후 지난 3개월은 '피의 석 달'이었습니다.

국민을 보호한다는 군은 이제 어디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권력만을 좇는 집단이자, 국민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폭력을 자행하는 '테러 집단'에 불과합니다.

이날 현재 800명 가까운 이들이 벌써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미얀마 시민들은 이 '봄의 혁명'을 계속하겠다는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합니다.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미얀마의 쿠데타 3개월을 사진으로 되돌아봤습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2월 1일 동도 트기 전 미얀마 군부는 의사당 등 주요 기관을 장악하고,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들을 구금한 뒤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명분은 지난해 11월 총선이 심각한 부정선거였음에도, 정부가 이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시민 대다수는 물론 국제사회조차도 군부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입법·사법·행정 전권을 장악한 가운데, 그날 저녁 문민정부 장·차관 24명의 직을 박탈하고 군사정부에서 일할 국방·외무부 11개 부처 장관을 새로 지명했습니다.

치밀한 각본에 따른 쿠데타였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2021.2.2' />

시민들은 당황했지만, 가만히 엎드려있지 않았습니다.

쿠데타 다음날인 2일 밤 최대 도시 양곤에서 냄비 등을 두드리는 '소음 시위'가 시작됐습니다.

미얀마에서는 냄비 등을 두드려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이 악마를 쫓아낸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합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쿠데타 나흘째인 4일 제2 도시 만달레이에서 첫 거리 시위가 벌어집니다.

이후 반군부 거리 시위 불길은 미얀마 전역으로 이어집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2021.2.7' />

사흘 뒤 최대 도시 양곤에서는 수 만명이 거리로 나서 "군부독재 거부"를 외쳤습니다.

군사정권이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전날부터 인터넷을 차단했지만, 성난 민심을 막을 순 없었습니다.

2007년 군정 반대 시위 이후 최대 규모였습니다.

2월22일에 열린 이른바 '22222' 총파업 시위는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참여해 말 그대로 사람이 강을 이뤘습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월급을 안 받아도 좋으니 군사정권 아래에서는 일하지 않겠다는 시민불복종운동(CDM)이 의료계를 시작으로 해서 은행권과 교육계, 철도, 항만 업계로 이어지며 군정에 커다란 타격을 줬습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이 정도까지 시민들이 거세게 반발할 줄은 아마 군부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물대포와 고무탄으로 겁박의 강도를 높였던 군부는 결국 평화 시위대에 실탄까지 사용하는 잔혹성을 보였습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2월 9일 수도 네피도 시위현장에서 20살 먀 뚜웨 뚜웨 카인이 머리에 실탄을 맞고 사경을 헤매다 열흘 만에 숨졌습니다.

실탄은 그녀가 쓰고 있던 헬멧을 관통했습니다.

이후 군경은 아무 거리낌 없이 총을 쏘았습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수백 명의 젊은이가 거리에서 '군부독재 반대,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다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2월 28일 양곤 시내에서 총격에 숨진 니 니 아웅 뗏 나잉(23)은 전날 페이스북에 "유엔이 행동에 나서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체가 필요한가"라는 해시태그(#)를 남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3월 초에는 만달레이에서 거리 시위에 참여했다 총탄에 맞아 19세 소녀 치알 신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망할 당시 입고 있던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다 잘 될 거야'(Everything will be OK)는 시위대에 승리를 향한 힘을 불어넣는 메시지가 됐습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양곤 산업지대인 흘라잉타야 시위 현장에서 노란색 헬멧을 쓴 시민이 바닥에 쓰러져 있고, 동료가 그의 옷깃을 붙잡고 마치 "일어나"라고 말하는 듯 울먹이는 사진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이처럼 무차별 총격이 계속되자 북부 미치나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수녀원 소속 안 누 따웅 수녀는 군경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자유와 인권을 요구하는 민간인들에게 총을 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따웅 수녀의 모습은 전 세계에 미얀마의 엄혹한 상황을 어떤 글보다 더 잘 전달했습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그러나 이런 호소에도 군경의 잔혹한 유혈 탄압은 계속됐습니다.

특히 한 살 배기 아기가 군경이 쏜 고무탄에 눈을 다치고, 5·7세 아동이 마구잡이 총질에 목숨을 잃는 잔혹한 상황은 전 세계인들을 충격과 분노에 빠뜨렸습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시위대는 군경에 끌려간 뒤에는 모진 고문과 폭행을 당했습니다.

군부는 관영 매체를 통해 이들의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너희들도 이렇게 될 수 있으니 시위하지 마라'며 경고하는 공포 전략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국제사회 비판에도 꿈쩍하지 않던 흘라잉 최고 사령관은 지난달 2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미얀마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했습니다.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참석한 가운데 정상들이 ▲폭력 즉각 중단 ▲당사자 간 대화 시작 등 5개 항에 합의했지만, 이후에도 군경 폭력에 사망자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
우려했던 대로 군사정권을 인정하는 판만 깔아준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미얀마 시민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분위기입니다.

쿠데타 이후 계속 저항한 이들은 앞으로도 저항을 계속할 듯합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쿠데타 후 약 한 달인 2월26일 초 모 툰 주 유엔 대사는 유엔 총회에서 쿠데타를 비판하고 미얀마에서 민주주의가 즉각 회복돼야 한다며 영화 헝거 게임에서 비롯된 저항의 상징 '세 손가락 경례'를 했습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인접한 태국 방콕에서 열린 미인대회에 출전한 미스 미얀마 한 레이는 군부가 1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3월27일 무대 위에서 군부의 유혈 탄압이 담긴 영상을 틀며 눈물로 전세계에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시민들은 스스로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무기를 들었습니다.

군경의 중화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더는 무방비로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다는 겁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일부는 군경과 맞서 싸우겠다면 스스로 소수민족 반군을 찾아가 군사교육을 받습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몇몇 대표적 소수민족 무장반군은 군부와 강하게 충돌하고 있습니다.

전략적 요충지를 빼앗기도 하고 태국 국경에 인접한 전초기를 점령해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공군부대 안으로 로켓포 공격도 가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지난달 23일 미얀마 시민들은 SNS를 중심으로 '감사해요, 한국'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과거 쿠데타와 군부 통치라는 아픈 경험을 공유한 한국민들의 관심이 어느 국민들보다 크다는 점을 잘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석 달을 넘기고 있는 쿠데타 사태에서 결국에는 승리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지지해달라는 호소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진톡톡] 미얀마 쿠데타 석 달의 기록

/연합뉴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