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일괄타결·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폐기'…'단계적 접근' 가능성
대북 압박 속 관여 수준 조절할 듯…관여의 구체적 내용은 안밝혀
北대응 주목, '中역할론·인권' 난제…한미정상회담서 이행방안 논의 전망
100일만에 등장한 바이든표 대북정책…대북외교 본격 시동거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30일(현지시간)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지 꼭 100일 만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공개됨에 따라 그간 저강도 도발로 '간보기'에 나섰던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이날 공개된 대북정책은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개략적인 얼개로, 향후 어떤 실질적인 구체성을 더하며 본격 실행에 옮겨질지 관심을 끈다.

일찌감치 새판짜기를 예고했던 바이든 정부가 공개한 대북 전략은 외교를 중심에 두고 지속해서 북한에 관여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에어포스원 기내 브리핑에서 대북정책 검토 마무리 사실을 확인한 뒤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면서 "일괄타결 달성에 초점을 두지 않을 것이며, 전략적 인내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역대 미 정부가 추구했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하지만, 과거 정책을 답습하지 않고 새 길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일괄 타결과 전략적 인내를 모두 부정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와 버락 오바마 전 정부의 대북 정책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평가된다.

100일만에 등장한 바이든표 대북정책…대북외교 본격 시동거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초 이른바 '화염과 분노'로 상징되는 대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가 한국 정부의 지속적인 설득 속에 두 번의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이끌었다.

하지만 2019년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핵 프로그램 전체를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는다며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 대화 무드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톱다운 방식의 유효성에도 정상 간에 한 번 틀어진 관계는 2년 넘게 북미 관계를 얼어붙게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런 부작용을 간파하고 톱다운 형식은 물론 일괄타결론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이 부통령으로 몸담았던 오바마 전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지워버렸다.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올 때까지 관여를 최소화하며 압박만을 지속하는 것 역시 실패한 정책이라고 공식화한 셈이다.

트럼프·오바마 전 정부가 제재 중심의 대북 압박을 지속하면서도 관여의 문제에서 극과 극이었다는 점에서, 바이든의 '제3의 길'은 압박 속에서 관여의 수준을 달리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의 대북 정책은 트럼프의 일괄타결과 정상외교, 오바마의 거리두기 간의 균형을 유지한 것', '우린 일괄타결 또는 전부 아니면 제로란 양자택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미 정부 관계자의 언급을 보도했다.

사키 대변인 역시 "우리의 정책은 북한과의 외교에 열려있고 (외교를) 모색하는 실용적이고 조정된 접근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 압박을 지속하는 가운데 실무 수준에서의 접촉부터 시작해 북한과의 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100일만에 등장한 바이든표 대북정책…대북외교 본격 시동거나

다만 바이든 정부는 관여 실행 방안 등 구체적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일괄타결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은 단계적 해법으로 무게 중심을 옮길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제재 해제와 비핵화 조치를 둘러싼 주고받기식의 단계론을 미국이 채택할지, 그렇다면 어느 수준까지 고려할지는 미지수다.

외교에 열려 있다고 했지만, 대화의 시작점을 어디에 둘지도 관심이다.

이와 관련, "우리의 접근법은 싱가포르 등 이전 합의에 기초할 것"이라는 익명의 정부 관계자 언급을 소개한 WP의 보도는 주목할 만하다.

트럼프 정부의 최대 대북정책 성과로 꼽히는 북미 '싱가포르 합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의미다.

동맹 중시를 천명한 바이든 정부가 싱가포르 합의 정신 계승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한국 정부의 의견을 수용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대목이다.

싱가포르 합의는 북미 간 새로운 관계 수립, 한반도의 지속적·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한국전 참전 유해 송환 등 4개 항을 담고 있다.

트럼프 정부 마지막 대북특별대표였던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도 작년 12월 고별 방한 당시 "싱가포르 정상 합의가 나아갈 길"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바이든 정부가 싱가포르 합의를 인정하는 토대에서 대북 관여를 시작할 경우 북한 역시 이에 호응해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 경우 한국 정부가 북미 협상에 개입할 공간이 생기면서 한반도에 또다시 훈풍이 불 여지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국제질서에 따른 제재·압박을 강조하고 있고, 북한이 이에 반발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관여 정책이 먹힐지는 예단할 수 없다.

특히 바이든 정부가 인권 문제를 그 어느 정부보다 강조하는 터여서 북한과의 접점 찾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무부는 불과 이틀 전인 28일 북한자유주간을 명목으로 낸 성명에서 북한을 가장 억압적인 국가 중 하나로 명시하면서 북한 인권 상황을 비판한 바 있다.

이와 관련, WP는 바이든 정부가 북한인권특사를 임명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바이든 정부는 이런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중국 역할론을 염두에 두고 있다.

중국을 최대 위협으로 규정하며 곳곳에서 마찰음을 키우고 있지만 기후변화, 북한 문제 등에서는 중국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난제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고 대북정책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는다는 측면에서 한미 간에 예정된 임박한 외교 일정들이 특히 주목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21일 미국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한다.

그에 앞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4∼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회의를 계기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양자회담을 하는 데 이어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도 추진 중이다.

이 자리에서 한미 양국은 미국의 대북정책을 테이블에 올려 놓고 더욱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뉴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