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으로 재판참여 나발니 "'벌거벗은 임금님' 푸틴이 권력에 집착"

사기 혐의로 수감 중인 러시아 야권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29일(현지시간) 퇴역군인 명예 훼손 혐의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모스크바 바부슈킨스키 구역 법원은 이날 나발니가 2차 대전 참전 예비역 대령 이그나트 아르테멘코(93)를 중상·비방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1심 유죄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라고 판결했다.

수감 나발니, '퇴역군인 명예훼손' 혐의 항소심서도 유죄 판결
나발니 변호인단은 앞서 지난 2월 말 1심의 유죄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었다.

나발니는 지난해 6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공을 세운 퇴역 군인 아르테멘코를 중상·비방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형사입건됐다.

그는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허용하는 헌법 개정을 지지한 아르테멘코의 동영상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들에 끌어다 올리며, 개헌을 지지한 그를 '매수된 하인', '양심 없는 사람', '반역자'라고 비난하는 글을 함께 게재했다.

1심은 나발니의 명예훼손 혐의를 인정해 85만 루블(약 1천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변호인단은 이날 항소심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며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수감 중인 모스크바 인근 교도소에서 화상으로 이날 재판에 참여한 나발니는 "모든 심리 과정은 (재판 문서에 포함된) 아르테멘코의 서명과 마찬가지로 가짜"라고 주장했다.

나발니는 또 자신에 대한 탄압의 배후로 푸틴 대통령을 지목하면서 그를 유명 동화 속의 '벌거숭이 임금님'에 비유했다고 야권 성향의 현지 TV 방송 '도즈디'(비)가 전했다.

나발니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끝까지 (나라를) 다스리고 싶어한다.

그가 권력에 집착하고 있다"면서 "그가 계속 집권하면 이미 잃어버린 10년에 또 다른 잃어버린 10년이 추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나발니가 이끄는 비정부기구(NGO) '반부패재단'은 이날 러시아 사법당국이 나발니에 대한 또 다른 형사사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발니가 '반부패재단'과 '시민권리보호재단' 등의 NGO를 조직해 운영해온 것과 관련, 시민의 인격과 권리를 침해하는 종교단체 혹은 사회단체를 조직한 혐의를 적용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되면 나발니는 또다시 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반부패재단 측은 우려했다.

모스크바 검찰청은 지난 16일 반부패재단·시민권리보호재단과 나발니의 다른 사회운동 단체 '나발니 본부' 등 세 단체를 극단주의 조직으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모스크바 시법원에 제기했고 법원은 현재 사전 심리를 진행 중이다.

수감 나발니, '퇴역군인 명예훼손' 혐의 항소심서도 유죄 판결
2019년 5월 창설된 반부패재단과 2020년 7월 반부패재단의 법적 승계 단체로 등록된 시민권리보호재단은 이미 러시아 법무부에 의해 다른 나라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외국의 자금 지원을 받는 '외국대행기관'(foreign agent)으로 지정돼 있다.

푸틴 대통령의 '정적'으로 통하는 나발니는 지난해 8월 항공기 기내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로 쓰러진 뒤 독일에서 치료를 받고 올해 1월 귀국했으나 곧바로 체포됐다.

그는 뒤이어 열린 재판에서 2014년 사기 혐의로 받은 집행유예가 실형으로 전환되면서 징역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