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처음으로 달에 도달했지만 발자국을 남기지 못한 유일한 우주 비행사 마이클 콜린스가 2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0세.

1930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한 호스피스시설에서 암투병 끝에 눈을 감았다. 유족은 “항상 삶의 도전에 겸손하고 품위 있게 맞선 그가 마지막 도전도 같은 방식으로 맞섰다”고 전했다.

콜린스는 1969년 7월 20일 동갑내기 우주 비행사인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과 함께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도착했다. 선장 암스트롱과 착륙선 조종사 올드린은 달 표면을 걸은 세계 첫 인류가 됐지만 콜린스는 그렇지 못했다. 사령선인 컬럼비아호를 조종하면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달에 착륙해 기쁨을 나누던 역사적 순간에도 시속 3700마일로 달 궤도를 돌며 시스템을 점검했다.

그가 탄 사령선이 지구와 달 반대편 궤도로 들어가자 모든 통신이 끊겼다. 48분간의 정적. 그 순간 자신이 태어난 행성을 볼 수 없는 유일한 인류가 됐다. 콜린스는 두려워하는 대신 고독을 만끽했다.

“나는 진정 혼자다. 완전히 고립됐다. 인류의 숫자를 센다면 30억 명과 달 저편에 둘, 그리고 이쪽에 신만 아는 한 사람을 더해야 한다.”

달 착륙 순간 무대 뒤의 연출가였던 그에겐 ‘잊혀진 우주비행사’ ‘기억하지 않는 세 번째 우주인’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그의 업적이 재조명받은 것은 2019년 달 착륙 50년이 되던 때다.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에도 그는 “운이 좋았을 뿐이며 우주비행사는 영웅이 아니다”고 손사래를 쳤다.

콜린스는 군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존 J 퍼싱 장군의 부관을 지낸 제임스 로턴 콜린스 육군 소장이다. 삼촌은 6·25전쟁 당시 미국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조지프 로턴 콜린스 장군이다.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를 나온 그는 공군 파일럿을 거쳐 1963년부터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사로 근무했다. 제미니 10호와 아폴로 11호를 조종하며 우주에서 266시간을 보냈다.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 국립항공우주박물관장 등을 지냈다.

아폴로 11호에서 가장 강렬했던 기억으로 그는 지구를 바라본 순간을 꼽았다. 그는 “지구가 부서지기 쉬워 보였다”며 “세계 정치 지도자들이 10만 마일 떨어진 거리에서 지구를 본다면 시끄러운 논쟁도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콜린스가 눈을 감으며 아폴로 11호에 탑승한 사람 중 생존한 사람은 올드린만 남게 됐다. 암스트롱은 2012년 8월 심장 수술 합병증으로 숨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추모 성명을 냈다. “그는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린 동등한 파트너였다. 지구가 깨지기 쉬운 행성이라는 사실을 일깨웠고 소중히 여겨달라고 우리에게 요청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