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미국이 배터리, 컴퓨터 칩(반도체) 등 미래 기술을 지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둔 이날 첫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다.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선 "미국이 2차 대전 때 민주주의의 무기고가 됐듯 다른 나라를 위한 백신 무기고가 되겠다"며 '백신 외교'에 적극 나설 뜻을 밝혔다.

◆초대형 인프라·복지 투자 촉구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65분간의 연설에서 취임 100일만에 미국이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보건·경제 위기에서 벗어나 “이륙할 준비가 됐다”고 했다. 이어 "향후 10년간 지난 50년 동안 본 것보다 많은 기술 변화를 볼 것"이라며 "우리는 그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과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는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는 수십년 전 2%에서 지금은 1% 미만으로 쪼그라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첨단 배터리, 바이오 기술, 컴퓨터 칩, 청정 에너지 등 미래 제품과 기술을 개발하고 지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발언은 초대형 인프라 투자계획인 '미국 일자리 계획'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중국 및 다른 나라와 21세기 승자가 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고 했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도로, 교량, 철도 등 전통적 인프라는 물론 반도체, 배터리 같은 미래 인프라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풍력발전기 블레이드(날개)를 베이징이 아닌 (펜실베이니아주)피츠버그에서 못만들 이유가 없다"며 "미국 일자리 계획은 수백만개의 보수 좋은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이어 "미국 일자리 계획에선 모든 투자는 '바이 아메리칸(미국 제품 구매)'이란 한가지 가이드라인을 따를 것"이라며 "미국의 세금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미국의 일자리를 만드는 제품을 쓰는데 사용될 것"이라고 했다.

또 "인프라 일자리의 90% 가까이는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는 일자리"라며 "미국 일자리 계획은 블루칼라의 청사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나리는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중산층이 건설했고, 중산층은 노조가 건설했다"고 했다. 자신은 월가의 편이 아니라 중산층과 노조의 편이라는 의미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규모 복지지출안을 담은 '미국 가족계획'도 제안했다. 여기엔 3~4세 무상교육, 커뮤니티 칼리지(지역 대학) 2년 무상교육, 12주간 유급휴가 및 병가 보장, 최소 2025년까지 6세 이하 자녀 1명당 최대 3000달러 세액공제 등이 담긴다고 설명했다.

이와관련 백악관은 미국 가족계획에 따른 복지지출 규모가 1조8000억달러라고 밝혔다. 2조30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계획과 합치면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는 지출 계획은 총 4조1000억달러에 달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재원 확보 방안으로 "기업과 상위 1% 부자가 정당한 몫을 내야 한다"며 '부자 증세'를 공식화했다. 그는 "최근 연구 결과 미국 최대 대기업 55개사가 지난해 연방 세금을 한푼도 안냈다"고 했다.

연봉 40만달러를 초과하는 상위 1%에 대해선 세율을 39.6%로 다시 올리겠다고 했다. 현재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은 37%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39.6%에서 37%로 낮춘걸 원위치시키겠다는 것이다.

100만달러 이상 투자수익에 대해선 노동에 대한 세금보다 더 낮은 비율을 낼 수 있게 하는 '구멍'을 없애겠다고 했다. 현재 주식, 채권, 부동산 등을 1년 이상 보유한 뒤 매각했을 때 투자수익에 최고 20%가 부과되는 자본이득세를 100만달러 이상 수익에 대해선 39.6%로 높이겠다는 뜻이다.

세금을 회피하는 백만장자와 억만장자에 대해선 국세청 조사를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연봉 40만달러 미만 소득자에 대해선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17년 감세(트럼프 감세)는 기업과 맨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박이었다"며 최고경영자(CEO)가 보통 직원 연봉의 320배를 번다는 연구도 있다고 소개했다. 또
"코로나 팬데믹으로 2000만명의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었는데 650명의 억만장자 순자산은 1조달러 이상 늘었다며 "'트리클다운 경제(낙수효과)'는 작동한 적이 없다"고 했다. 최저시급 15달러 인상 법안도 의회가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의 불공정 무역 안 참겠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수요를 충족하고 있다며 "우리는 다른 나라를 위한 백신 무기고가 되겠다"고 했다.

중국에 대해선 "경쟁을 환영하고 충돌을 추구하진 않겠지만 미국의 이익을 지키겠다고 시진핑 주석에게 분명히 말했다'"며 "국영기업을 위한 보조금, 미국의 기술과 지식재산권 절도 등 미국 노동자와 산업을 해치는 불공정 무역관행은 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럽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처럼 인도태평양에서도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또 "어떤 책임있는 미국 대통령도 기본적인 인권침해에 침묵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을 직접 거명하진 않았지만 중국의 신장 자치구 인권탄압, 홍콩 민주주의 침해 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볼 수 있다.

북한과 이란 핵에 대해선 "미국과 세계의 안보에 위협"이라며 "외교와 단호한 억지력을 통해 두 나라가 제기하는 위협에 동맹과 함께 긴밀히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미 국민의 평가는 정치 성향에 따라 극과 극으로 갈렸다. 미 NBC가 지난 17~20일 성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민주당 지지자의 90%, 공화당 지지자의 9%가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응답자 전체로는 53%가 지지 의사를 밝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취임 100일 당시(40%)보다는 높았지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61%)보다는 낮았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