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CEO
데이비드 바주키 '로블록스' CEO

게임 안 만드는 게임 회사?
초기 투자자 없어 개인자금 써가며
‘누구나 직접 게임 만드는 플랫폼’ 구상

다음 목표는 “가상세계 공간 구축”
오디션하듯 게이머들이 게임 만들어…美 어린이 열광하는 '메타버스 놀이터'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한 회사.”

미국의 대형 게임회사인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최고경영자(CEO)가 이런 찬사를 보낸 기업이 있다. 미 게임 플랫폼 회사 로블록스다. 데이비드 바주키 CEO가 창업한 로블록스는 게임을 직접 개발하지 않는 게임 회사다.

일반 게임 회사는 할리우드의 제작 비용을 방불케 하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소수의 뛰어난 개발자를 활용해 블록버스터 게임을 출시한다. 로블록스는 대신 수많은 게이머에게 게임 개발자가 될 기회를 준다. 이런 방법을 통해 로블록스 플랫폼에서 다양한 게임이 쏟아져 나올 수 있게 했다.

로블록스 이용자 사이에서 바주키는 그의 아바타 ‘빌더맨’으로 통한다. 바주키의 목표는 로블록스가 메타버스의 선두주자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메타버스는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미래 정보통신기술(ICT)의 핵심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게임의 규칙을 바꾸다
오디션하듯 게이머들이 게임 만들어…美 어린이 열광하는 '메타버스 놀이터'

바주키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1989년 교육용 소프트웨어 기업인 놀리지 레볼루션을 창업했다. 학생과 교사가 가상으로 물리 실험을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다. 1998년 회사를 2000만달러(약 223억원)에 매각했다.

놀리지 레볼루션을 경영하는 동안 바주키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어린이들이 교과서에 나오는 물리 실험보다 자동차 충돌, 건물 붕괴 등 다양한 가상 상황을 만드는 데 더 관심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점에 착안해 2004년 로블록스를 공동 창업하고 2006년 서비스를 시작했다. 회사 이름은 로봇(robot)과 블록(blocks)을 합성해 지었다.

오디션하듯 게이머들이 게임 만들어…美 어린이 열광하는 '메타버스 놀이터'

하지만 회사가 안착하기까지의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사업 초기에는 개인 자금으로 충당해야 했다. 로블록스의 초기 투자사 중 한 곳인 미 벤처캐피털 그레이록의 데이비드 제 파트너는 “바주키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묵묵히 사막을 걸어온 것과 마찬가지”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로블록스는 개발자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게임에서 발생한 수익 중 일부를 지급하고 있다. 회사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로블록스 게임 개발을 통해 125만 명이 총 3억2800만달러(약 3665억원)를 벌었다. 상당수가 10대다. 이 중 300명 이상이 10만달러를 받으며 ‘억대 연봉자’가 됐다. 바주키는 “전도유망한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아메리칸 아이돌(미국의 연예인 오디션 프로그램)’을 개최하는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린이들의 가상놀이터 만들어
로블록스의 지난해 성장세는 특히 가팔랐다. 코로나19로 주요 사용자인 어린이들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로블록스 이용이 확산된 덕분이다. 어린이들은 로블록스에서 게임을 즐기고 제작할 뿐 아니라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도 활용했다. 지난해 로블록스의 하루 활성 이용자 수는 2019년보다 85% 급증한 3260만 명에 달했다. 사용 시간은 124% 늘어난 306억 시간을 달성했다.

어린이들 사이에서 로블록스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사용자의 절반이 13세 미만 어린이다. 용돈 관리 앱 루스터머니가 어린이 이용자의 수요를 조사해 지난해 말 선정한 크리스마스 선물 순위에서 로블록스의 디지털 화폐는 닌텐도 스위치, 엑스박스, 컴퓨터 등을 제치고 4위를 차지했다.

작년 매출은 2019년보다 82% 증가한 9억2390만달러(약 1조원)를 기록했다. 로블록스는 플랫폼을 무료로 이용하게 하는 대신 게임 아이템 등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디지털 화폐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매출을 올리고 있다. 다만 지난해 지출이 늘어나면서 순손실은 2억5330만달러로 2019년(7100만달러)보다 적자폭이 커졌다.

로블록스는 지난달 10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다. 지난 22일 종가를 기준으로 한 시가총액은 385억달러(약 43조원)에 이른다. 1월 마무리한 투자라운드에서 인정받은 기업가치인 295억달러보다 90억달러 불어났다.
메타버스 대장주로
바주키는 2018년 모교인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주요 콘텐츠가 게임이라는 점만 빼면 로블록스는 유튜브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로블록스는 한때 인기 게임 마인크래프트나 온라인 가상현실 플랫폼인 세컨드라이프와 비교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바주키의 목표는 더 원대해졌다. 그는 NYSE 상장을 위해 제출한 신고서에서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하며 “가상세계에 지속 가능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구축하겠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메타버스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앞으로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 확대 적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미국 증시에서 투자자들은 메타버스 테마를 대표하는 종목으로 로블록스를 꼽고 있다.

로블록스의 과제로는 사용자층 확대와 해외 진출이 꼽힌다. 로블록스는 현재의 이용자보다 연령대가 높은 사용자를 확보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진출 국가를 늘리는 것이다. 로블록스는 투자자 중 한 곳인 텐센트와 손잡고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다. 로블록스 플랫폼에서 이용할 수 있는 기능으로 게임 외에 원격학습이나 회의, 콘서트 등을 추가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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