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세포바이러스(CMV),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인플루엔자바이러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미국 바이오회사 모더나(MRNA)가 개발 중이라고 밝힌 차세대 백신 후보물질이다.

모더나가 메신저리보핵산(mRNA) 플랫폼을 활용한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서 수십년간 정복하지 못한 HIV 시장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mRNA 플랫폼으로 HIV 백신시대 연다

19일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모더나의 mRNA 백신 기술이 수십년간 계속된 HIV 백신 개발 노력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모더나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스크립스연구소, 게이츠재단 등과 함께 올해 말 사람을 대상으로 한 두 종류의 HIV 백신 임상시험을 시작할 계획이다. 모더나의 mRNA 백신이 HIV에 대응하는 중화항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게 목표다.

2019년 기준 세계에서 HIV에 감염된 사람은 170만명으로 추정된다. 70만명이 에이즈로 사망했다. 에이즈는 HIV에 감염된 뒤 면역 기능이 떨어져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질환이다. 치료제가 많이 개발돼 관리가능한 질환이 됐지만 저개발국가 등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두려운 질환이다.

모더나가 HIV 백신 개발을 선언했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실제 백신을 개발하기까지는 많은 관문이 남았기 때문이다. 지나친 기대감은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mRNA 플랫폼을 이용한 HIV 극복 시도는 분명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20년 간 HIV를 연구한 라픽 세칼리 에모리대 바이러스학 교수는 "어떤 플랫폼도 HIV에 의미있는 결과를 내지 못했다"면서도 "코로나19에서 좋은 결과를 냈기 때문에 HIV에도 플랫폼이 효과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48명 중 47명 'B세포 활성화'

윌리엄 쉬프 스크립스연구소 면역학 교수는 올해 2월 모더나 투자자를 대상으로 HIV 백신에 대한 일부 데이터를 공개했다.

2018년부터 시작한 이 연구는 HIV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성인 48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고용량과 저용량 시험군을 나눈 뒤 HIV 백신 후보물질을 투여해 항체를 만드는 B세포가 활성화되는지를 파악했다.

그 결과 48명 중 47명의 B세포 수치가 목표로 삼았던 수준에 도달했다. 아직 동료평가 등을 거치지 않아 과학적으로 완전히 인정받지는 못하는 데이터다.

쉬프 교수는 mRNA 백신 플랫폼이 백신 개발 속도를 단축하는 것은 물론 비용도 절약해줄 것으로 내다봤다. 단백질을 몸 밖에서 만들어 몸 속에 넣어주는 기존 백신 플랫폼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만성질환과 코로나19 달라" 한계도

아직 백신 기술의 한계가 크다는 분석도 나왔다. 세칼리 교수는 "HIV는 코로나19와 다르다"며 "HIV에 감염된 뒤 치료하지 않으면 적은 수의 세포 안에서 바이러스가 영구적으로 활동한다"고 했다.

HIV는 세포 핵 속으로 침투해 만성질환으로 이어지지만 코로나19는 아직 만성질환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mRNA 코로나19 백신이 감염을 완전히 막는 것보다는 감염된 뒤 질환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는다는 것도 한계다.

다양한 한계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mRNA 백신 플랫폼을 이용한 HIV 백신 후보물질이 1년 안에 임상 2상시험 등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한계에도 HIV 파이프라인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것은 아직 개발된 백신이 없기 때문이다.

GSK는 지난해 2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진행하던 HIV 백신 임상시험을 중단했다. 성인 남녀 5400명에게 후보물질을 투여했지만 예방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존슨앤드존슨이 '모자이크 백신'을 개발하고 있지만 올해 안에 결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