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부터 영·러 등 격전…9·11 테러로 '또 전쟁 수렁'
미-탈레반 평화합의 성과 얻기도…결국 미군 20년 만에 철수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는 열강 침략으로 얼룩져왔다.

19세기 영국·러시아부터 소련을 거쳐 2001년부터는 미국이 20년간 전쟁을 이어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오는 9월 11일까지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군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아프간에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릴 기회가 마련됐다.

아프간 정부와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새 정부를 세우고 평화 시대를 열지 또 다른 내전의 역사가 되풀이될지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열강 침략 점철된 아프간 수난사…'美 20년전쟁'까지 시련 연속

◇ 지정학적 요충지 아프간…끝없는 외세 침략에도 굴복 안 해
아프간은 열강이 끊임없이 탐내던 나라였다.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중동을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지역이기도 했다.

주위에는 중국, 파키스탄, 이란, 소련(현재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 강국이 포진했다.

19세기에는 영국과 러시아가 이 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을 벌였다.

아프간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3차례에 걸쳐 영국과 전쟁을 치른 끝에 1919년 독립했다.

하지만 부족 간 갈등, 쿠데타, 내전이 이어지며 혼란에 빠졌다.

1979년에는 소련의 침공을 받았다.

이후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됐다.

그러자 아프간 국민 다수는 맹렬하게 저항했다.

미국, 파키스탄, 중국, 이란 등으로부터 무기와 자금 지원도 받았다.

결국 소련은 1989년 철수했다.

이후 종파와 종족을 아우르며 소련에 저항했던 무슬림 반군조직 무자헤딘이 1992년 친소 정권을 무너뜨리고 아프간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했다.

아프간인들은 끝없는 외세 침략에도 굴복하지 않는 기개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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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레반의 급성장…9·11 테러 그리고 미군 공습
내전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1994년 탈레반 운동이 선보였다.

남부에서 세력을 넓혀간 탈레반은 이슬람 이상국가 건설이 목표였다.

탈레반은 현지어로 '종교적인 학생', '이슬람의 신학생' 등을 뜻한다.

이슬람 경전을 급진적으로 해석한 탈레반은 파키스탄의 군사 지원 속에 급속히 힘을 키워나갔다.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친미 국가'들의 지원을 등에 업은 탈레반은 1996년 라바니 정부를 무너뜨렸다.

탈레반은 이슬람 샤리아법(종교법)을 앞세워 엄격하게 사회를 통제했다.

음악, TV 등 오락이 금지됐다.

도둑의 손을 자르거나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돌로 쳐 죽게 하는 벌도 허용됐다.

특히 여성은 취업 및 각종 사회 활동이 제약됐고 교육 기회가 박탈됐다.

외출할 때는 부르카(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복장)를 착용해야 했다.

아프간 전 영토의 90% 이상을 장악했던 탈레반 정권은 2001년 9·11 테러로 무너진다.

미국은 9·11 테러 후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조직을 테러 배후로 지목했다.

이어 탈레반 정권에 빈 라덴을 내놓으라고 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거부했고 미국은 2001년 10월 대규모 공습을 단행했다.

탈레반 정권은 미군의 무차별 공습에 버티지 못하고 한 달여 만에 붕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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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렁에 빠진 전쟁…평화 협상도 삐걱
탈레반은 곳곳에서 반격에 나섰다.

대도시나 주요 거점은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 차지였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여전히 탈레반의 영향력이 강했다.

그러다가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2009년 재선에 성공하면서 평화협상 구상에 대한 운을 띄웠다.

적극적으로 화답한 이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었다.

2009년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도 임기 내에 아프간전을 종료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평화협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아프간 정부는 "정부와 탈레반이 협상 주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탈레반은 "미국의 꼭두각시인 아프간 정부와 머리를 맞댈 수 없다"고 맞섰다.

미국-탈레반 간 포로-죄수 맞교환, 탈레반의 대외창구 노릇을 하는 카타르 도하 정치사무소 개설(2013년) 등 간간이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고비 때마다 이견이 불거졌다.

협상 과정에서는 난항이 거듭됐다.

이어 2015년 7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이 내전 14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회담을 열었지만, 곧바로 동력을 상실하기도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2015년 10월 임기 내에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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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탈레반 평화합의 성과…이후 아프간 정부 참여 협상은 지지부진
그러다가 2016년 9월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 다음으로 큰 반군 세력인 '헤즈브-에-이슬라미 아프가니스탄'(HIA)과 평화합의를 성사시키면서다.

탈레반 내부에서도 무차별 테러를 중지하고 평화협상에 참여하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와중에 2017년 8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적극적인 아프간 군사전략을 새롭게 발표했다.

미군 철수 시한을 제시하는 대신 테러 세력과 싸움에서 승리를 내세웠다.

이후 아프간 주둔 병력은 늘어났지만, 미국에 전황이 유리하면 탈레반과 직접 협상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실제로 2018년 7월 앨리스 웰스 미국 국무부 남·중앙아시아 수석 부차관보가 카타르에서 극비리에 탈레반과 만났다.

양측 고위급 대표단이 아프간 정부를 제외한 채 직접 협상 테이블에 나선 것은 2001년 후 사실상 처음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극단적인 테러를 일삼던 탈레반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민간인 겨냥 '자살폭탄 테러'를 중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과 탈레반 간 평화협상은 2019년 들어 더욱 탄력이 붙었다.

그해 1월 양측은 아프간 내 국제테러조직 불허 등을 조건으로 외국 주둔군을 모두 철수하는 내용의 평화합의 골격에 동의하기도 했다.

이후 양측은 지난해 2월 평화합의에 서명했다.

미국은 이 합의에서 14개월 내인 올해 5월 1일까지 미군 등 국제동맹군 철수를 약속했고, 탈레반은 아프간에서의 극단주의 무장조직 활동 방지와 함께 아프간 정파 간 대화 재개 등에 동의했다.

이어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은 9월 12일부터 카타르 도하에서 평화 협상을 시작했다.

양측이 이런 협상 테이블을 마련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지만 뚜렷한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와중에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정부가 동의한 평화합의를 재검토하기 시작하자 탈레반은 강력하게 반발했고 평화협상은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에서 완전히 발을 빼겠다며 철군을 선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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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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