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니혼게이자이신문)
(자료:니혼게이자이신문)
일본을 대표하는 에너지·인프라 기업인 도시바가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다. 인수가격이 2조3000억엔(약 23조3401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영국계 PEF인 CVC캐피털파트너스는 도시바 경영진에 지분 100%를 인수해 상장폐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현재 주가에 30%의 경영 프리미엄을 얹은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6일 종가기준 도시바의 시가총액은 1조7437억엔이다. 30%의 프리미엄을 더하면 인수가격은 2조3000억엔 수준이 될 전망이다.

도시바의 지분은 골드만삭스(7.4%) 등 해외 금융회사 및 투자회사가 62.7%, 다이이치생명(2.5%) 등 일본 금융회사들이 13.4%를 나눠갖고 있다. 개인주주 비율은 20.2%다.

도시바 경영진이 인수에 동의하고 일본 정부의 승인을 받으면 CVC는 정식으로 주식공개매수에 나설 계획이다. 도시바는 경제안보에 직결되는 원자력발전 사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해외자본이 인수하려면 경제산업성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작년 6월 시행된 개정 외환법에 따라 재무성의 사전 심사도 받아야 한다. 개정 외환법은 해외 자본이 일본 주요 상장기업의 주식을 1% 이상 사려면 일본 정부의 사전 심사를 받도록 했다.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CVC가 도시바를 손에 넣을 가능성은 상당하다는 분석이다. 2018년 4월 도시바는 구루마다니 노부아키 전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부행장을 사장으로 영입했다. 53년만에 외부에서 영입한 최고경영자(CEO)다. 구루마다니 사장은 CVC재팬 회장을 역임한 경력이 있다. 이 때문에 CVC와 사전에 교감을 나눴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일본 내부적으로도 해외 PEF가 도시바를 인수하는데 거부감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도시바가 지난 수년간 행동주의 펀드와 격렬하게 대립한 탓에 신속한 경영판단을 못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도시바는 2016년 부정회계 문제와 미국 원자력발전 자회사의 대규모 손실로 재무위기에 빠졌다. 2017년에는 2년 연속 채무초과 상태가 이어져 상장폐지 위기에 놓이자 6000억엔 규모의 증자를 실시했다.

이 때 증자에 참여해 도시바의 주요주주가 된 싱가포르 투자펀드 에피시모캐피털매니지먼트 등 행동주의 펀드들은 임원 선임, 자회사 거래, 배당 정책 등을 놓고 사사건건 도시바 경영진과 대립해 왔다.

행동주의 펀드들과 대립이 격화하면서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구루마다니 사장의 연임을 찬성하는 비율도 58%까지 떨어졌다. 지분 100%를 보유한 단일주주가 탄생해 도시바가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적합한 지배구조를 갖는게 낫다는 목소리가 일본 재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재무위기를 맞은 이후 도시바는 도시바메모리(현 기옥시아)를 미국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베인캐피털-SK하이닉스 연합군에 매각하고 해외원전과 건설 사업부 등 채산성이 떨어지는 사업부를 발빠르게 정리했다.

사업재편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2019년에는 1304억엔의 영업이익을 냈다. 1년 만에 3.7배 늘어난 수치다. 지난 1월말에는 도쿄증시 2부 시장으로 강등됐던 주식도 3년 만에 1부로 승격됐다.

CVC는 1981년 영국에서 설립된 글로벌 PE다. 세계 23개국에 거점을 두고 1178억달러(약 132조원)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츠바키 브랜드로 유명한 시세이도의 일상용품 사업부를 1600억엔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우리나라에도 진출해 2019년 종합 숙박 예약 플랫폼 여기어때를 인수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