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핀테크(금융기술)업체 앤트그룹이 지난해 11월 정부 압박에 기업공개(IPO)를 철회한 뒤 상장을 포기하는 중국 정보기술(IT)기업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에만 76개사가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상하이 커촹반(科創板·과학혁신판)에 상장하려다 계획을 취소했다. 중국 금융당국의 규제가 점점 강화되는 추세여서 기업이 몸을 사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장 포기 기업 잇따라

"앤트그룹 꼴 날라"…中테크기업들, IPO 포기
4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으로 커촹반 상장을 철회한 기업은 180개사(누적 기준)에 이른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이끄는 앤트그룹 상장이 중단된 뒤 IPO 계획을 접는 회사가 급증하는 추세다.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12건에 불과했던 커촹반 상장 철회 건수는 12월 50개사로 불어난 뒤 올 들어 더욱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앤트그룹은 지난해 중국 기업 최대 규모의 IPO를 추진해 기대를 모았다. 상하이증시와 홍콩증시에 동시 상장해 340억달러(약 38조4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할 예정이었지만 중국 당국의 갑작스런 개입에 상장이 무산됐다. 마윈 창업자가 지난해 10월 공개석상에서 금융당국을 ‘전당포’에 비유하는 등 위험 방지만 앞세운다고 비판한 뒤 정부 압박이 거세졌다. 마윈뿐만 아니라 징셴둥 앤트그룹 회장 등 경영진이 금융당국에 소환됐고, 중국 인민은행은 앤트그룹에 금융지주사 설립 등 5대 개선 사항을 요구하기도 했다.

앤트그룹 상장이 좌절된 뒤 중국 테크기업은 정부의 규제 우려 등으로 잇따라 IPO를 철회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국 전자상거래기업 징둥(JD)닷컴의 핀테크 자회사 JD테크놀로지도 지난달 30일 커촹반 상장을 포기했다.

JD테크놀로지는 지난해 9월 IPO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지금까지 승인도 거부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FT는 “작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글로벌 주식시장이 다시 살아나면서 세계적으로 IPO가 대폭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중국 기업의 상장 철회 움직임이 더욱 눈에 띈다”고 했다.

커촹반에 ‘보이지 않는’ 규제

커촹반은 미국 나스닥시장을 중국에 만든다는 목표로 2019년 7월 출범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스타트업 육성을 지원한다며 ‘허가제’가 아니라 ‘등록제’를 도입해 간편하게 상장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원칙적으로는 적자 기업도 예상 시가총액이나 실적, 연구개발(R&D) 투자 등 다양한 기준 가운데 하나만 충족하면 등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은 앤트그룹 상장 중단을 계기로 급변했다. 그동안은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에 필요한 재무 서류만 제출하면 신속한 상장이 가능했지만, 최근에는 ‘보이지 않는’ 기준을 추가해 허가제처럼 운영하고 있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CSRC는 또 커촹반 상장 희망 기업에 ‘과학기술’ 경쟁력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재무 요건을 강화하는 등 새로운 운영안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증권시장 독립 분석가인 프레이저 호위는 “커촹반은 개혁을 위한 전진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지금 일어나는 일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며 “앤트그룹 상장 중단을 기점으로 중국 금융시장이 뒤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IPO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상장을 기다리는 업체 수는 급증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이스트머니에 따르면 상장을 추진 중인 중국 기업은 2300개사에 달한다. 지난해와 같은 속도로 IPO가 진행된다면 이들 업체가 모두 상장하는 데 4년이 걸린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