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내전 6년…"두고 온 가족 생각에 죄책감 반, 미안함 반"

"제주에는 유채꽃이 만발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풍경이 또 있을까요? 제 인생에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순간이지만, 마음 한편이 무겁습니다.

고향 예멘에 남겨진 가족 때문입니다.

"
2018년 초 무함마드 아우다리(37) 씨는 아내와 함께 내전 중이던 모국을 떠나 말레이시아를 거쳐 제주도를 찾았다.

곧바로 난민 인정 신청서를 냈고 같은 해 5월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았다.

제주 서귀포시의 한 감귤 농장에 취직도 했다.

말레이시아에서 낳은 장남과 제주에서 얻은 막내딸 등 네 식구가 정식으로 한국에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됐지만, 고국 소식을 들을 때면 가슴이 내려앉는다.

제주 예멘 난민 "행복한 韓 생활…고국 내전 소식에 눈물"

그는 4일 연합뉴스에 "집과 학교, 병원과 도로가 모두 파괴된 마을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며 "많은 예멘인이 전쟁의 고통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데 나 홀로 평화를 누려도 되는 건지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개입하면서 본격화된 예멘 내전이 발발한 지 6년이 지났다.

2018년 전쟁터를 벗어나 제주에 온 예멘 난민들은 평화를 찾았다는 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고국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남겨둔 가족 걱정에 속이 타들어 간다고 입을 모은다.

아우다리 씨는 "고국에 환갑이 넘으신 아버지와 형제들을 두고 왔다"며 "종종 이메일로 안부를 주고받고 있으나 열악한 현지 통신망 탓에 연락이 끊길 때면 별 생각이 다 든다"고 털어놨다.

홀로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는 죄책감도 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비슷한 시기 제주를 찾은 예멘인 B 씨는 "한국에 정착했다는 안도감과 나만 잘살고 있다는 죄책감이 뒤섞인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며 "제주 생활이 담긴 내 사진을 부모님께 보냈더니 '아들이 천국에서 살고 있구나'라는 답장이 왔다"고 털어놨다.

제주 예멘 난민의 체류 신청을 도왔던 한 인권 변호사는 "한국에 온 난민 중 모국에 가족을 두고 온 이들이 대부분"이라며 "그러나 귀향할 수도,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일도 없는 탓에 무력감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예멘 내전이라는 이슈를 애써 외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제주 난민 유입 당시 이들의 숙식 문제를 지원했던 김 모 씨는 "악화하는 내전과 잇따른 테러 등의 고국 소식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무도 먼저 언급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라며 "그저 한국에서의 삶에 충실하려고 마음을 추스리는 이도 있다"고 전했다.

제주 예멘 난민 "행복한 韓 생활…고국 내전 소식에 눈물"

한용길 제주이주민센터 사무국장은 "예민 난민들을 상담한 결과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전쟁터에서 얻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탓에 귀향하고 싶지 않다는 양면적인 감정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며 "이들의 우리 사회 적응을 위해서라도 지자체나 정부가 나서 심리적인 회복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 따르면 2018년 난민 인정 신청서를 낸 예멘인 484명 중 인정 2명과 인도적 체류허가 412명 등 85.4%에 해당하는 414명이 정식으로 한국에 살 수 있게 됐다.

도내 이주민인권센터 관계자는 "정확한 집계를 하기 힘들지만 정착민 중 약 20%인 80여 명만이 제주에 살고 나머지는 육지의 주요 산업단지에 흩어져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력분쟁·테러 자료를 분석하는 다국적 단체 'ACLED'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예멘 내전 5년여간 발생한 사망자는 민간인 1만2천600명을 포함해 총 11만 명을 넘긴 것으로 집계됐다.

내전 첫해인 2015년부터 2017년까지 1만5천여 명 수준이었던 연간 사망자는 2018년부터 매년 3만 명 전후로 급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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