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 휴양도시 vs 내륙 고원도시, 한일보다 멀어…역사상 영국계 vs 보어인 대립축
[샵샵 아프리카] 남아공 케이프타운과 프리토리아는 딴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남서쪽 해변 휴양도시 케이프타운과 북동쪽 내륙고원 도시 프리토리아는 같은 나라가 아니다.

"
케이프타운 한인회 한호기 회장의 주장이다.

케이프타운과 프리토리아 사이는 약 1천400㎞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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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베이징 사이는 950㎞이고 서울과 도쿄 간 거리도 1천150㎞인데 케이프타운과 프리토리아는 훨씬 더 멀다.

거리로 보면 일리가 있는 얘기다.

면적으로도 남아공은 대한민국의 12배다.

이렇게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기후도 달라 케이프타운은 지중해성 기후이고 프리토리아와 인근 경제중심 요하네스버그는 청량한 고지 기후이다.

프리토리아는 대통령궁이 있는 행정수도이고 케이프타운은 국회가 있는 입법수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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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26일까지 케이프타운 출장을 다녀오면서 한 회장의 주장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그래서인지 남아공 한인회는 요하네스버그·프리토리아 중심의 남아공 한인회가 대표성을 띠면서도 케이프타운 한인회, 더반 한인회가 지역별로 따로 있다.

역사적으로 케이프타운에 먼저 정박하고 정착한 유럽인은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얀 판 리비어크 등이다.

그러나 영국이 18세기 말 이후 케이프타운에 눈독을 들여 네덜란드계 후손인 보어인들을 주변으로 쫓아내고, 연이어 몰아붙이자 보어인들은 내륙 쪽으로 북상해 결국 프리토리아와 요하네스버그에 둥지를 틀었다.

케이프타운 현지 가이드 아키미트에 따르면 처음에 영국인들이 보어인들을 밀어내서 커진 주변 도시들이 스텔렌보스, 팔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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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포도주가 스텔렌보스 등에서 생산된 것도 프랑스 종교전쟁 당시 개신교도인 위그노파 난민들이 와서 정착한 결과다.

남아공 포도주는 저렴하고 품질 좋은 것으로 유명하고, 특히 피노타지는 남아공의 대표적 고유 품종이다.

영국과 보어인 간의 대립사(史)는 흑인 노예 문제와도 연관된다.

일찌감치 1833년 영국 의회가 대영제국 내에서 노예제를 폐지했으나 당시 정착 백인의 대다수인 보어인들은 경제적 손실 등을 이유로 크게 반발했다.

나중에 영국은 1948년 보어계가 주도한 남아공 국민당 정권 발족 이후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에도 반대쪽에 섰다.

최근 넷플릭스 화제작 '크라운'에 나온 것처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남아공 제재에 미온적이기는 했어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중심으로 영연방 차원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반대했다.

영국계-보어계 간 대립과 전쟁의 역사는 남아공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반복적 주제, 라이트모티프(leitmotif)라고도 할 수 있다.

1960년부터 아파르트헤이트를 본격화한 백인 정권은 1994년 흑인 인권을 위한 '자유 투사'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민주정권이 들어서면서 종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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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첫 번째 수도였던 케이프타운에도 인종차별과 극복의 역사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가이드 아키미트는 "흑인 노예 숙소였던 건물이 한때 몸 파는 여성들의 장소가 됐다가 다시 최초의 의회가 잠시 들어섰다.

흑인 노예제 폐지의 상징성 때문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나중에 의회는 지금의 새 건물로 옮겨 갔다.

비(非)백인 계층이 강제 이주된 인근 지역에서 다시 케이프타운으로 편입되기 위해 수십 년간 투쟁해오고 있다는 타운도 보였다.

동남아 말레이인들이 정착한 보캅 구역은 알록달록 예쁜 원색 건물들이 눈에 띄었는데 이곳도 당초 철거 대상에 올랐다가 간신히 보존됐다고 한다.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가 공식 종식된 것도 케이프타운에 있는 웨스턴케이프 주의회에서 공식 폐기 결정한 것을 행정부가 수용하는 형식을 띠었다고 한다.

남아공은 내각책임제 요소가 가미된 대통령 중심제 국가이다.

거칠게 보면 영국 대 네덜란드 구도의 유럽 세력이 현 남아공 지역에서 각축하다가 원주민인 흑인들이 정권을 잡고 한 세대 가까이 나라를 운영해왔다.

헤겔의 역사철학 논리대로라면 정반합의 변증법이 이뤄진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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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프리토리아와 요하네스버그의 넓은 도로망은 이전 백인정권이 잘 닦아놓은 것이라고 한다.

원래 전력망도 잘 세워 이웃 나라들에 퍼줄 만큼 남아돌았는데 흑인 정권 들어선 이후 홀대받은 백인 정비 기술인력이 빠져나가 지금은 '순환정전'을 할 정도로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설명도 있다.

언어적 측면에서 케이프타운과 좀 더 글로벌화된 요하네스버그는 영어 사용이 우세하지만, 프리토리아만 해도 아프리칸스어(토착 백인어)가 병기되고 라디오 음악방송에서도 영어로 진행되다가 아프리칸스어로 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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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 해안도시 더반의 경우 인도계가 많고 역시 영어가 주로 쓰인다고 한다.

이야기를 다시 처음으로 돌리면 케이프타운과 프리토리아는 지금도 남아공을 이끄는 양대 축이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관광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케이프타운 한인 자녀들도 일자리를 찾아 요하네스버그로 많이 가는 상황이다.

현재는 경제적 무게추가 내륙으로 많이 와 있는 것이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케이프타운도 다시 큰 활기를 띨 것이다.

아무튼 록다운(봉쇄령)으로 내륙 고원에만 갇혀 있다가 1년여 만에 케이프타운과 아프리카 대륙 남서단 '희망봉' 바다를 보니 가슴이 탁 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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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