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아케고스캐피털 때문에 세계 주요 은행들이 최대 100억달러(약 11조원)의 손실을 볼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가 파산한 이후 최악의 헤지펀드 사고가 터지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를 비롯한 금융감독당국이 나섰다. 아케고스 사태가 드러낸 규제의 구멍을 메꿀 조치가 임박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미 은행 JP모간체이스는 30일(현지시간) 아케고스와 거래한 은행들의 총 손실이 50억달러를 넘겨 100억달러까지 예상된다는 의견을 냈다. 가장 충격이 큰 은행은 예상 손실액이 30억~40억달러로 알려진 크레디트스위스다. 1분기 실적 악화와 평판 악화, 주주들의 반발을 감수해야 할뿐 아니라 16억달러 규모로 예정했던 자사주 매입 계획도 포기해야 할 처지다. 일본 은행 노무라의 손실은 20억달러로 예상된다. 위기가 감지되자마자 26일부터 재빨리 아케고스 관련 지분을 블록딜한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에는 여파가 미미할 전망이다. 또다른 주요 거래처인 도이체방크는 손실이 거의 없다고 앞서 발표했다.

아직 아케고스와의 관계가 드러나지 않은 은행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아케고스와 거래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 은행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은 30일 3억달러 손실을 예상한다고 발표했다.

금융감독당국도 움직이고 있다. 미 SEC는 29일 아케고스와 거래한 은행들을 소집해 긴급회의를 열어 상황을 파악한데 이어 관련 자료를 요청하는 등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의장인 미 금융감독안전위원회(FSOC)는 31일 화상회의를 열고 안건 중 하나로 헤지펀드를 다룬다. 월스트리트의 자율규제기관인 금융산업규제국(FINRA)과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도 조사에 들어갔다.

‘월가 저승사자’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워런 미 민주당 상원의원은 30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규제를 피해간 헤지펀드, 불투명한 파생상품, 과도한 차입(레버리지) 등이 아케고스 사태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한국계 펀드매니저 빌 황이 아케고스를 패밀리오피스로 세우면서 SEC에 등록할 의무를 피해갈 수 있었다. 아케고스가 활용한 파생상품인 총수익스와프(TRS)도 도마 위에 올랐다. 투자자는 TRS를 통해 주식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도 수수료만 내면 투자수익을 받아갈 수 있다. 지분율이 10%를 넘겨도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공시 의무가 없고 대규모 레버리지도 일으킬 수 있다. 빌 황이 보유 자산(약 100억달러) 대비 5배 가치의 주식을 미공개로 샀다가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을 당한 원인이다. 과거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TRS는 금융계의 대량살상무기”라고 우려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