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에서 지난 26일 190억달러(약 21조5000억원) 규모의 블록딜이 쏟아져 나오면서 관련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350억달러가량 증발했다. 전례 없는 블록딜에 시장이 발칵 뒤집혔지만 주체와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월스트리트에선 한 헤지펀드가 마진콜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28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익명의 투자자가 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를 통해 26일 보유 주식을 블록딜 등으로 처분했다. 블록딜은 대량매매를 뜻하며 보통 장 마감 후 매수자를 찾아 다음날 장 시작 전에 마무리된다.

이날 개장 전 골드만삭스를 통해 미국 증시에 상장된 바이두, 텐센트뮤직, VIP숍 등 중국 기업 주식 66억달러어치가 블록딜로 처분됐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시장에는 별 충격이 없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중국 기업들을 미 증시에서 퇴출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면서 이번 블록딜 또한 중국 기업들에 국한한 문제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 방송기업 비아콤CBS와 디스커버리, 캐나다 전자상거래몰 솔루션기업 쇼피파이, 영국 패션 플랫폼 파페치 주식까지 매물로 나오자 시장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며 고평가 논란이 일었던 비아콤CBS는 이날 주가가 전날보다 27.3% 빠졌다. 중국 기업 아이치이와 GSX 주식도 매매 대상에 포함됐다. 이날 하루 동안 관련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350억달러가량 증발했다.

매도자의 신원은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월가에선 헤지펀드 전략을 구사하는 패밀리오피스인 아키고스캐피털을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CNBC는 소식통을 인용해 아키고스캐피털이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했다가 마진콜을 당하자 보유 지분을 반대매매 등으로 처분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마진콜은 부족해진 증거금 등을 보충하라는 요구를 뜻한다. 아키고스 대표는 한국계 펀드매니저인 빌 황이다. 관련 정보가 제한돼 있어 이번 블록딜이 일회성으로 끝날지, 추가로 시장을 흔드는 불씨로 번질지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