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병원도 입원환자 급증세 감당 못해…지방으로 갈수록 상황은 더 비참
"봉쇄강화로 상파울루 멈춰"…한인동포들 "참담한 상황, 더 버티기 어려워"

"체온은 정상입니다.

혹시 다른 이상증세는 없나요? 일회용 마스크를 한 장 더 써야 합니다.

"
브라질에서 코로나19 하루 사망자가 처음으로 3천 명을 넘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나서 하루가 지난 24일 오전(현지시간) 상파울루 시내 시리우-리바네스 병원에서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브라질에서 가장 뛰어난 의료진과 시설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이 대형 병원도 코로나19 사망자와 확진자가 급증세를 계속하면서 점점 한계상황을 느끼고 있다.

[르포] 코로나 사망 30만명 '암울한' 브라질…"하루하루가 전쟁같아"
[르포] 코로나 사망 30만명 '암울한' 브라질…"하루하루가 전쟁같아"
혈액검사실에 근무하는 한 간호사는 "코로나 환자를 위한 병상이 부족해지면서 지금은 일반 환자를 받던 병실도 코로나 환자 치료용으로 돌린 상태"라면서 "병원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병원의 종양 전문의는 "중환자실 병상 부족으로 일반 환자를 받지 못하고 있고 수술도 대부분 미룬 상태"라면서 "백신 대량 접종 만이 현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라고 강조했다.

[르포] 코로나 사망 30만명 '암울한' 브라질…"하루하루가 전쟁같아"
브라질 보건부 집계를 기준으로 전날까지 누적 사망자는 29만8천676명, 누적 확진자는 1천213만19명이다.

전체 확진자 가운데 1천60만여 명은 회복됐으나 123만 명 정도는 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받는 환자 가운데 상당수는 입원이 필요한 중증 환자다.

코로나19 입원 환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브라질은 의료체계의 붕괴 상황에 처했다.

의료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상파울루시에서도 700여 명이 중환자실 입원 대기 중이다.

최근에는 20대 환자가 중환자실 병상 입원을 기다리다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충격을 줬다.

상파울루 인근 도시의 상황은 더 비참하다.

이미 200명 가까운 환자가 중환자실에 가보지도 못하고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 브라질리아에 있는 한 병원에서는 병상 등이 모자라 환자가 숨지면 시신을 바닥에 놓은 채 다른 환자 치료에 나서고 있다.

의료진이 부족해지자 치과의사까지 소집하고 있다.

브라질리아 당국의 구스타부 호샤 수석국장은 "입원환자를 위한 병상은 물론 사망자를 안치할 수 있는 공간도 부족하다"면서 "누구를 병상에 눕히고 누구를 치료해야 하는지 판단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르포] 코로나 사망 30만명 '암울한' 브라질…"하루하루가 전쟁같아"
이런 상황에서 주 정부와 시 정부로서는 봉쇄를 강화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

인구 1천200만 명의 상파울루시 당국은 주민 이동 통제를 위해 밤 8시부터 다음날 5시까지 차량 5부제 시행하고 있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밤에는 외출하지 말라는 얘기다.

일부 필수 업종을 제외하고 대부분 상가의 영업은 전면 금지됐다.

음식점도 배달만 허용하고 있다.

시 당국이 올해와 내년 휴일 가운데 일부를 앞당겨 26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임시연휴를 선포하는 바람에 상파울루 도시 전체가 말 그대로 얼어붙었다.

상파울루의 중심가인 파울리스타 대로 주변에서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는 루시우(52)는 "모든 게 멈췄다.

문은 열어놓고 있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서 "하루하루가 전쟁 같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런 상황이 끔찍하고 두렵다"고 말했다.

[르포] 코로나 사망 30만명 '암울한' 브라질…"하루하루가 전쟁같아"
브라질이 코로나19의 늪에 빠질수록 한인 동포들도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한인 동포들은 소셜미디어(SNS)에 단체 토론방을 만들어 정보를 공유하는 등 나름대로 대책을 모색하고 있으나 코로나19 사태가 1년 넘게 이어지는 데다 피해 규모가 줄기는커녕 더 커지면서 누구 할 것 없이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한국산 기계장비를 수입 판매하는 송인호(71) 씨는 "의류업이든 요식업이든 업종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다"면서 "봉쇄가 더 연장된다고 하는데, 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인 동포도 "요즘은 언론에 나오는 뉴스마다 암울한 내용만 가득하다"면서 "이런 상황이 1년 이상 계속되면서 너무 지친 상태"라고 거들었다.

코로나19 사태가 갈 데까지 간 상황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이날 주지사와 상·하원 의장, 연방대법원장, 관계부처 장관 등이 참석한 대책회의를 열어 '코로나 대응 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루 앞서 전날에는 TV·라디오 연설을 통해 올해 안에 모든 국민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겠다며 "우리는 곧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르포] 코로나 사망 30만명 '암울한' 브라질…"하루하루가 전쟁같아"
그러나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언론은 "보우소나루 정부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치 않을 때면 위원회를 만든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브라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압력단체인 브라질변호사협회는 이날 연방검찰을 향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형사 기소하라고 촉구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범미보건기구(PAHO) 카리사 에티엔 국장은 전날 언론 브리핑을 통해 "브라질의 끔찍한 상황이 이웃 국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초기 대응 실패와 방역지침 무시, 백신 확보 부진 등이 브라질을 남미를 넘어 전 세계의 골칫거리로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