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 수장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사진)이 24일(현지시간) 유럽 동맹국들에 “미국은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중국은 국제 규칙을 무시하고 있고 중국의 5세대(5G) 통신망 기술은 심각한 감시 위협을 가져온다”며 중국을 맹비난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에서 연설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체제 경쟁자’로서의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중국과 협력할 부분은 협력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블링컨 장관은 “각국은 가능한 상황에서 중국과 협력할 수 있다”며 협력이 필요한 분야로 기후변화 대처를 꼽았다. 블링컨 장관은 NATO 외교장관 회담 참석을 위해 지난 22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브뤼셀을 방문 중이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이 국제적 규칙, 미국과 동맹의 가치를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며 중국의 군사적 야심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5G 통신망과 관련해선 “중국의 기술은 심각한 감시 위협을 가져온다”며 “스웨덴 핀란드 한국 미국 같은 나라의 기술기업을 한데 모으고, 안전하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대안을 육성하기 위해 공공·민간 투자를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5G 통신망 장악을 막고 에릭슨, 노키아, 삼성전자 등 ‘믿을 수 있는’ 기업들로 5G 통신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에 맞서기 위해 ‘동맹의 힘’을 강조했다. 그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5%가량을 차지하는 미국이 유럽·아시아 동맹과 함께하면 이 비율이 60%까지 올라갈 수 있다”며 “이는 중국이 무시하기 어렵다”고 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은 “중국을 적으로 여기진 않는다”면서도 “중국의 부상은 우리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또 “중국은 우리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라며 홍콩 민주주의와 신장위구르족 인권 문제 등을 사례로 거론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5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유럽 동맹 챙기기’에 나선다. 이 자리에서도 중국 문제가 비중 있게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미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CFR)는 ‘중국의 일대일로가 미국에 주는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경제적 세력 확장 정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가 저개발국의 부채 위기 증대, 거시경제 안정성 저하, 보조금을 지원받는 중국 국유기업의 세계 시장 진출 확대, 석탄발전소 건설 증가에 따른 기후변화 대처 역행 등 각종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