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민영 완성차 업체인 지리자동차의 상하이증시 커촹반(과학창업판) 상장이 ‘기술 미달’을 이유로 중단됐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커촹반은 유망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허가제’ 대신 ‘등록제’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감독당국이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면서 상장을 철회하는 기업이 급증하고 있다.

지리차는 지난해 6월 상하이거래소에 커촹반 상장 심사를 신청했다. 커촹반 기업공개(IPO)로 200억위안(약 3조5000억원)을 조달해 전기자동차 등 미래차 개발에 활용한다는 계획이었다.

지리차의 모기업인 지리홀딩스는 홍콩거래소에 상장돼 있다. 시가총액은 2200억홍콩달러(약 32조원) 안팎이다. 지리홀딩스의 지난해 전체 자동차 판매량은 주력 자회사인 지리차 133만 대를 포함해 210만 대에 달했다. 그러나 시가총액은 33만 대를 판매한 BYD(5000억홍콩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지리홀딩스는 지리차의 커촹반 상장을 통해 전기차 사업을 부각시켜 그룹 주가를 재평가받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상하이거래소는 작년 9월 지리차 상장을 승인했다. 하지만 거래소 승인 이후 통상 3개월 내에 이뤄지는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 등록이 6개월째 지연되고 있다. 증감위는 지리차의 기술이 첨단기술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커촹반의 수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는 재무 상태가 건전한 기업에 기술 요건을 들어 상장을 막은 첫 사례로 꼽힌다.

금융당국이 이처럼 커촹반 상장에 까다로운 기준을 들이대면서 상장을 포기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올해 들어 이날까지 중국 증시 IPO 계획을 철회한 기업은 모두 84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9곳에서 크게 늘었다. 또 상장 대기 중인 기업도 730곳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금융당국은 시장 개혁의 일환으로 2019년 7월 문을 연 커촹반에 등록제를 도입했다. 이어 지난해 8월에는 촹예반이 등록제로 바뀌었다. 원칙적으로는 적자 기업도 예상 시가총액이나 실적, 연구개발(R&D) 투자 등 다양한 기준 중 하나만 충족하면 등록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알리바바그룹의 핀테크 자회사 앤트그룹의 상장을 중단시킨 이후 금융당국은 몇 가지 ‘보이지 않는’ 기준을 추가해 실질적으로 허가제처럼 운영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증감위는 또 커촹반 상장 희망 기업에 ‘과학기술’ 경쟁력에서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등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는 커촹반 운영세칙 수정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