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경제적 협력국이자 체제 경쟁자'…EU, 신중한 접근법으로 '줄타기'
중국 보복 조치에 대응 강화 가능성…양측 투자협정 비준 '불투명'
[신냉전 가속] ③ EU, 중국과 인권문제 대립…경제협력도 '흔들'
유럽연합(EU)이 중국을 상대로 인권 제재를 부과하고 중국이 이에 맞대응하면서 양측간의 긴장이 전에 없이 고조되고 있다.

EU는 22일(현지시간)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의 이슬람계 소수민족 위구르족 탄압과 인권 유린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중국 관리 4명과 단체 1곳을 제재하기로 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즉각 맞대응했다.

중국은 같은 날 유럽의회 및 네덜란드·벨기에·리투아니아 의회 의원과 EU 이사회 정치안전위원회 등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의 주권과 이익을 심각히 침해하고, 악의적으로 거짓말과 가짜정보를 퍼뜨린 유럽 측 인사 10명과 단체 4곳을 제재하기로 했다"고 제재 이유를 밝혔다.

EU의 제재 직후 미국, 영국, 캐나다 역시 위구르족 인권 탄압을 문제 삼아 대중국 제재에 가세하면서, 서방과 중국의 대결 구도가 뚜렷해졌다.

중국에 대한 제재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발표했지만,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후 중국에 대한 서방의 조율된 공동 대응으로 여겨진다.

AFP 통신은 EU가 인권 유린과 관련해 중국을 제재한 것은 1989년 베이징 톈안먼 광장 사태로 무기 금수 조치를 취한 이래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로이터도 톈안먼 사태 이후 EU가 중국을 상대로 취한 의미 있는 첫 제재라고 평가했다.

[신냉전 가속] ③ EU, 중국과 인권문제 대립…경제협력도 '흔들'
EU는 미국과 달리 그동안 중국과의 마찰을 피해왔다.

지난해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처리 강행 당시에도 미국이 강력히 대응한 것과는 달리 EU는 제재를 배제하고 대화를 강조하면서 오히려 미국과 공조에 균열을 노출했다.

이는 중국에 대한 대응에 있어 '딜레마'에 빠진 EU의 현실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EU에 중국은 중요한 경제적·전략적 협력 대상인 동시에 갈수록 공세의 수위를 높이는 '체제 경쟁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EU에 두 번째로 큰 교역 대상이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중부 유럽 국가들에 중국은 엄청난 시장인 동시에 주요 투자국이다.

이탈리아, 헝가리 등은 중국의 '경제 영토' 확장 프로그램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크게 지지한다.

그러나 한편에선 법치, 자유, 민주주의, 인권 등 EU가 추구하는 가치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중국에 대한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인권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EU는 위구르족 문제에도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다만, 중국을 지정학적 경쟁자로 간주하고 갈등해온 미국과 EU의 인식에는 온도 차가 있다.

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에 좀 더 엄격한 입장을 취하라고 압박했을 때도 EU는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았다.

EU의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작년 6월 중국과 어떤 종류의 냉전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신냉전 가속] ③ EU, 중국과 인권문제 대립…경제협력도 '흔들'
EU는 지난해 말에는 중국과 투자 협정 체결에 합의했다.

이 때문에 동맹 간 연대를 바탕으로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려는 바이든 미 대통령의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나온 EU의 이번 인권 제재는 다분히 상징적이지만, EU의 대중국 정책이 상당히 강경해질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로이터는 평가했다.

다만 EU는 이번에도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올라있는 천취안궈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 당서기는 제재하지 않았다.

이런 절제된 접근법을 고려하면 중국의 즉각적인 '반격'은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전했다.

EU와 중국 간 투자 협정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실제로 중국이 주요 유럽의회 의원 5명과 EU 회원국 하원의원 3명을 제재 대상에 올리면서 유럽의회는 EU-중국 투자 협정을 비준하지 않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유럽의회 사회민주당 그룹은 비준을 위해서는 제재가 해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비드 사솔리 유럽의회 의장은 중국의 조치는 "용납할 수 없다"면서 그에 대한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리 피에르 베드렌 유럽의회 의원은 중국의 제재하에 있는 상황에서 "유럽의회가 어떤 협정을 비준한다는 생각을 품는 것 자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보렐 고위대표도 전날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보복은 새로운 환경,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냈다"며 중국에 대해 좀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중국 전문가인 필리프 르코르는 EU가 줄타기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폴리티코에 "한편으로 그들은 대기업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투자 협정 이면에 있는 생각"이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은 또한 민주 국가들의 일부로,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 불만을 나타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