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가 2030년까지 유럽이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20%를 차지해야 한다고 회원국에 촉구했다. 역내 반도체 생산 역량을 높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에 도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앞으로 10년간 유럽의 디지털 전환을 위한 비전과 목표, 방안 등을 담은 로드맵을 이날 공개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EU는 역내 반도체 생산이 세계 수요의 최소 20%가 돼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과 아시아 기업들에 의존해온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 자립에 나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반도체는 자동차, 휴대폰, 게임기 등의 핵심 부품이다. 최근 수요가 급증하며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멈춰 섰던 공장들이 빠른 속도로 생산을 재개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생산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EU는 유럽 내에 반도체 생산시설 등을 확대하는 방안을 회원국들과 논의하고 있다. 업계 선두주자인 대만 TSMC나 삼성전자의 5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을 넘어서는 기술력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의 최종 목표는 2㎚ 수준까지 도달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EU 집행위는 이번 로드맵에서 숙련된 디지털 기술을 지닌 인력 양성과 디지털 인프라 향상, 공공서비스 디지털화 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EU 안에 정보통신기술 전문가 2000만 명을 고용해야 한다고 했다. 또 2025년까지 유럽의 첫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고 2030년까지 이 분야를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티에리 브르통 EU 역내 담당 집행위원(사진)은 “유럽은 시민과 기업들이 더 낫고,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며 “이것이 코로나19 이후 세계에서 우리가 회복하고 디지털에서 앞서나가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