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인프라 투자 논의에 본격 착수했다. 의회에서 논의 중인 1조9000억달러(약 2100조원) 규모의 초대형 경기 부양책이 통과되기도 전에 또 다른 부양책 마련에 시동을 건 것이다. 낙후한 인프라의 현대화와 함께 고용 확대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하지만 ‘공격적 돈 풀기’가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워 금리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백악관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하원 교통·인프라위원회 소속 민주·공화당 의원들과 만나 현대적이고 지속 가능한 미국 인프라 투자 필요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프라 투자는 도로, 교량, 수로, 학교 등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소속으로 인프라 투자 법안을 주도하는 피터 드파지오 하원 교통·인프라위원장은 CNBC에 출연해 올봄 하원에서, 올 5월 말까지 상원에서 각각 인프라 부양책을 처리하길 희망한다고 ‘시간표’를 제시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인프라 부양책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무엇보다 미국의 인프라 개선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토목공학학회는 전날 미국의 국가 인프라 등급을 ‘C-’로 진단했다.

2100조원 부양책 통과도 전에…'인프라 부양책' 시동 건 바이든
고용 창출과 경기 회복을 노린 측면도 있다. 미국 경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코로나19가 강타하기 전에 비하면 아직까지 1000만 명가량이 일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지난달 초 “1조9000억달러 부양책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추가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공화당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부양책 성격과 규모를 어떻게 제안하느냐에 달렸다. 이날 백악관 논의에 참석한 샘 그레이브스 하원 교통·인프라위원회 공화당 간사는 워싱턴포스트에 “인프라 법안은 도로, 교량 같은 교통 수요에 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화당은 교통 인프라를 가장한 또 다른 ‘그린 뉴딜’은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뉴딜은 기후변화 대처를 위해 정부 주도로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를 줄이고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인프라 투자를 늘리는 방안이다. 민주당 내 진보 진영이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공화당이 반대하면 의회에서 법안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하원은 민주당이 확실한 과반이지만 상원은 총 100석 중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을 양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상원의장을 겸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해야 간신히 과반을 확보하는데,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반대 토론)를 무력화하고 법안 통과를 강행하려면 6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국가 채무 확대와 인플레이션 우려도 부담이다. 미국은 코로나19 대처를 위해 지난해에만 총 다섯 차례에 걸쳐 3조7000억달러의 재정을 투입했다. 여기에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1조9000억달러 부양책이 통과되면 미국이 코로나19 위기에 투입하는 재정은 5조6000억달러로 늘어난다. 2020 회계연도 본예산(4조7900억달러)보다 많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와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올리비에 블랑샤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미 1조9000억달러 부양책만으로도 경기 과열과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프라 부양책까지 더해지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폭되면서 국채 금리 상승세가 가팔라질 수 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