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핵 문제와 관련한 미국과 유럽의 조기 협상 제안을 거부했다. 미얀마에선 미국의 제재에도 군부가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무력 진압해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3년 전 언론인 암살 배후로 지목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제재 대상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선 ‘솜방망이 제재’ 논란이 일고 있다. 국제 무대에서 민주주의 진영의 대표로서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구상이 출발부터 암초에 부닥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바이든 외교 곳곳서 '삐그덕'…"美가 돌아왔다"더니 리더십 '휘청'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미국과 유럽 3개국(영국, 프랑스, 독일)의 최근 언행을 고려할 때 이들과 조기 협상을 할 때가 아니라고 본다”며 협상 제안을 거부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은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란, 중국, 러시아와 함께 이란 핵협정(JCPOA)에 서명했다. 이란이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푸는 조건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불완전한 협정’이라며 2018년 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이란 제재를 복원했다. 이에 맞서 이란은 핵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직후 이란 핵협정 복원을 최대 과제로 내세웠다. 하지만 양측의 시각 차는 여전히 크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에 핵협정 준수와 함께 새로운 협정에서 미사일 개발 억제도 핵심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이란은 미국의 제재 해제를 선결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연합(EU)이 지난달 21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과의 조기 협상을 이란에 제안했지만 이란이 이를 거부했다. 백악관은 “미국은 의미 있는 외교를 재개할 뜻이 여전히 있다”고 밝혔지만 언제 어떤 식으로 돌파구가 마련될지는 불확실하다.

미얀마 상황도 악화되고 있다. 유엔인권사무소는 지난달 28일 미얀마 전역에서 군부의 무력 사용으로 시위대 중 최소 18명이 숨지고 3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미얀마 정치범지원연합에 따르면 이날 하루에만 1000여 명이 체포됐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즉각 성명을 내고 동맹과의 공조 방침을 재확인하며 미얀마 군부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경고했다. 미국은 앞서 쿠데타 실세인 민아웅흘라잉 최고사령관을 포함해 미얀마 군부 인사를 제재했다. 하지만 이날 유혈 진압을 계기로 미국과 서방의 제재가 군부의 위력을 억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바이든 행정부의 사우디 왕세자에 대한 조치도 논란이다. 미 정보당국은 지난달 26일 사우디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크지가 2018년 10월 터키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배경엔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승인이 있었다는 평가를 담은 보고서를 공개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후 76명의 사우디인을 대상으로 비자 발급 제한 등 제재를 가했지만 정작 왕세자는 제재 명단에서 빠졌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하는 바이든 정부의 기조와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내에서도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과 리처드 블루먼솔 상원의원이 왕세자에 대한 조치 필요성을 언급하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미국 리더십 복원’에 동맹이 반신반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출마하거나 그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후보가 나와 미국이 언제든 ‘트럼피즘(트럼프주의)’으로 복귀할 가능성을 동맹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최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안보에서 유럽이 미국에 너무 의존하면 안 된다”고 한 발언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미국과 독일의 이익이 항상 수렴하는 것은 아니다”고 한 말을 사례로 들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내 여론을 의식해 보호주의 기조를 유지하는 점도 동맹들이 바이든 행정부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배경으로 꼽힌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