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극우 성향 라디오 진행자 러시 림보, 암으로 사망
트럼프 ""가장 위대한 투사이자 승리자""
진보 측 "약한자 공격하며 비겁하게 생계 유지"
진보성향 할리우드 인사들, SNS에 애도 대신 '환영'
폐암 합병증으로 사망한 러시 림보의 평소 모습. 그는 애연가로 잘 알려져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폐암 합병증으로 사망한 러시 림보의 평소 모습. 그는 애연가로 잘 알려져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지옥을 즐겨라"

미국의 보수 논객이자 라디오 진행자인 러시 림보가 사망하자 일부 할리우드 배우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환영 논평을 내거나 심지어 고인을 조롱하는 내용을 잇따라 올려 미국 내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노선이나 견해가 다르더라도 고인에 대한 예우를 존중하는 미국의 정치 관행과는 동떨어진 사례여서다. 할리우드가 진보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처럼 림보의 사망에 대놓고 반색하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그의 지나친 극우 성향과 과격한 언행 때문이다. 20여년간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면서 림보는 정치 평론보다는 음모론과 막말로 무장한 '선동가'로서 기질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극우주의자들은 그를 영웅이라며 열렬히 추종했지만 보수적인 공화당 내부에서도 '선을 넘는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유의 메달' 훈장 받기도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료였던 미국 보수 논객 러시 림보가 별세했다. [사진=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료였던 미국 보수 논객 러시 림보가 별세했다. [사진=AP 연합뉴스]

미국의 대표적 보수 논객으로 통하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훈장까지 받은 라디오 진행자 러시 림보가 지난 17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70세.

림보는 1980년대 이후 미국 우익의 대표적인 논객이자 미국의 문화 전쟁에서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투사로 꼽힌다. 그는 거침없고 날선 언변으로 민주당과 진보주의자를 강력 비판하며 우파 세력을 결집했다. 정치인과 유명인, 주류 언론이 그의 대표적인 조롱 대상이었다. 트럼프 행정부 국내 정치노선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 초기 감염력을 평가절하한 것도 림보의 영향이 컸다는 후문이다. 보수 매체의 대표주자인 폭스뉴스 조차 코로나 19에 대한 경계심을 주문했지만, 림보는 "코로나는 단순한 감기"라고 치부했고 이후에는 "중국의 의도된 공격"이라는 음모론을 설파했다.

특히 직설적이고 극단적 발언으로 유명한 림보의 라디오 프로그램은 1988년 전국적으로 통합되면서 대규모의 열성 추종자를 낳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그가 사망 직전까지 진행했던 3시간짜리 라디오 프로그램 '러시 림보 쇼'가 애청자 1500만명, 연간 수익이 연간 4000만달러(약 443억 원)에 달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지나친 선동과 음모론, 과격한 발언이 문제가 됐다. 여성권리 운동가를 폄하하기 위해 '여성 나치'라는 용어를 만들고 의회 청문회에서 산아 제한에 관해 발언한 한 법대생을 '난잡한 계집'(slut)이라고 부르는 등 종종 설화를 빚었다.

할리우드와 척을 지게 된 대표적인 사건은 '마이클 J 폭스 따라하기' 였다. 영화 '백투더퓨처'로 유명한 마이클 J 폭스는 대표적인 친 민주당 성향 배우로 2006년 민주당 선거 광고에 출연했다. 그러자 림보는 자신의 쇼에서 당시 파킨슨병 환자였던 마이클 J 폭스의 몸떨림을 흉내내며 놀렸다. 이밖에 에이즈로 죽어가던 환자들을 조롱하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딸인 첼시 클린턴이 12살이던 시절 그녀를 '개'라고 칭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림보는 매일 미 전역에서 600개 이상의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전달되는 방송에서 움츠리지 않고 포퓰리스트로서 자신의 브랜드를 옹호했다"며 좌파의 명분을 비판하고 공화당의 의제를 형성하는 것을 도왔다고 평가했다.
러시 림보(가운데)가 멜라니아 트럼프(오른쪽)과 국회 국정 연설을 듣고 있다. 맨 왼쪽은 러시 림보의 부인 캐서린 림보. [사진=AP 연합뉴스]

러시 림보(가운데)가 멜라니아 트럼프(오른쪽)과 국회 국정 연설을 듣고 있다. 맨 왼쪽은 러시 림보의 부인 캐서린 림보. [사진=AP 연합뉴스]

재임 중 림보를 높이 평가하며 그와의 인터뷰에 적극 응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작년 2월 의회 국정연설 때 림보에게 미국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수여하는 깜짝 장면을 연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림보를 "수백만 명의 미국인에게 사랑받는 특별한 사람", "가장 위대한 투사이자 승리자"라고 치켜세웠고,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는 림보의 목에 훈장을 걸어줬다.

당시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냉담한 침묵 속에 의장석에 자리를 지켰고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고함을 내지르기도 했다.
할리우드 인사들, 트위터에 러시 림보 죽음 조롱
트위터에는 러시 림보의 죽음 조롱하는 글이 넘쳐난다. [사진=트위터 캡처]

트위터에는 러시 림보의 죽음 조롱하는 글이 넘쳐난다. [사진=트위터 캡처]

보수 측에서 그를 전설로 예우하고 영웅으로 추켜세운 것과는 달리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주인공인 마크 하밀을 비롯해 론 펄먼, 베트 미들러 등 진보적 성향의 할리우드 배우들은 트위터를 통해 러시 림보의 사망을 공개적으로 '축하'했다. 여배우 앰버 탬블린은 "도살장에서 썩어라"라고 맹비난했고 그녀의 남편인 배우 데이비드 크로스는 "암이 암을 죽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할리우드 스타 알렉 볼드윈의 동생 배우 빌리 볼드윈은 "지옥을 즐겨라"며 일갈했고, 펄프 픽션에 출연한 배우 로잔나 아퀘트는 "증오와 거짓말을 하면서 인생을 낭비한 삶은 얼마나 수치스러운가"라며 마지막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라고 통쾌함을 드러냈다.

론 펄먼은 "헬보이(그가 주인공을 맡았던 영화 속 캐릭터)로서 러시 림보와 영원히 시간을 보내야 할 악마에게 동정심을 보낸다"며 조롱에 가세했다. 여배우이자 싱어송라이터는 베트 미들러는 "그는 그의 보상대로 틀림없이 더운 곳(지옥)으로 갔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방송인들도 가세했다. TV 작가 마이크 드러커는 "지금 당장 러시 림보를 놀리는 것은 쉽다"며 "하지만 그가 죽음이 많은 사람을 즐겁게 했다는 걸 더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가인 시오반 톰슨은 "러시 림보는 그가 죽어야 할 시간보다 69년 늦게 죽었다"고 말했고 방송 사회자인 센트 위구르는 "그는 살아 있을 때 정말 끔찍한 사람이었다"며 "그는 힘없는 사람들을 공격하면서 비겁하게 생계를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방송 진행자는 에린 라이언은 "신이 러시 림보를 삶에서 제외시켰다"고 했고 음악가 피네아스는 "러시 림보를 상대해야 할 지옥의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밖에도 많은 진보성향을 가진 네티즌들은 트위터에 'Rest in P*ss', 'Good Riddance', 'Rot in Hell'라는 태그를 달면서 러시 림보의 죽음을 환영했다. 'Rest in P*ss'는 'Rest in peace'(고이 잠드소서)를 비꼬는 뜻을 담고 있으며 'Good Riddance'는 "보기 싫은 것이 없어서 시원하다", "꺼져라, 눈에 안보여 속이 후련하다"라는 의미를 가졌다. 'Rot in Hell'의 함의는 "나는 네가 지옥에서 썩어 없어지기를 바란다"이다. 트위터는 해당 태그에 대해 직원들이 수동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언급해 당분간 러시 림보의 죽음을 환영하는 온라인 분위기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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