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악마가 온 듯한 추위"
지난 16일 미국 일리노이주 미시간 호수의 눈과 얼음 [사진=EPA 연합뉴스]

지난 16일 미국 일리노이주 미시간 호수의 눈과 얼음 [사진=EPA 연합뉴스]

역대급 한파에 시름을 앓고 있는 미국에서 갖가지 극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상황이 심각한 텍사스주는 이번 주말까지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할 거란 전망이 나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번 한파를 두고 "악마가 온 듯한 추위"라는 표현까지 사용해 심각성을 대변했다.
"이번 한파로 최소 31명 사망"
한 시민이 개인용 제설장치로 눈을 치워보지만 역부족이다. [사진=AP 연합뉴스]

한 시민이 개인용 제설장치로 눈을 치워보지만 역부족이다. [사진=AP 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시간) 기록적인 한파 영향으로 숨진 사람이 텍사스 등 8개 주(州)에서 최소 31명으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대규모 정전으로 추위에 떨던 주민들이 자동차나 벽난로를 이용해 난방을 시도하다가 화재나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텍사스주 휴스턴에서는 정전으로 인해 차고에 주차된 차에서 지내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일가족 2명이 사망했고 할머니와 손자 3명이 벽난로에 불을 지피다가 화재로 숨졌다.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는 어린이 1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치료를 받았고 해리스 카운티에서만 200건이 넘는 일산화탄소 중독 사례가 발생했다.
텍사스주의 한 분수대. 얼음으로 뒤덮였다. [사진=AP 연합뉴스]

텍사스주의 한 분수대. 얼음으로 뒤덮였다. [사진=AP 연합뉴스]

눈이 녹아 미끄러운 빙판길 때문에 숨지는 일도 다수 발생했다. 루이지애나주에서는 한 남성이 얼음에 미끄러지며 머리를 부딪쳐 숨졌으며 테네시주에서는 10세 소년과 6세 여동생이 얼음이 깨진 연못에 빠져 사망했다.

텍사스주와 켄터키주에서는 미끄러운 도로 탓에 10명 이상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미시시피주에서는 차가 빙판길에 전복돼 남성 1명이 숨졌다.

미주리주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는 제설기와 부딪힌 사망자도 1명씩 나왔다. 겨울 폭풍으로 최소 4개의 토네이도가 발생했다. 노스캐롤라이나 해안에서 발생한 토네이도로 3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쳤다.
텍사스주 남부 해안서 바다거북 수천마리 떼죽음 위기
구조된 바다거북들 [출처=트위터]

구조된 바다거북들 [출처=트위터]

한파로 인해 동물들의 피해도 발생했다. CNN, 더힐 등 미국 매체는 지난 16일 텍사스주 남부에 위치한 사우스파드레 해안가에서 차가운 파도에 떠밀려온 바다거북 수천마리가 구조됐다고 보도했다. 일부 개체는 차가운 바닷물에 떠밀리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등 기절 상태였다고 전했다.

평소 겨울에도 영상 10도 이상의 기온을 유지하던 텍사스주의 경우 30여년 만에 기온이 영하 18~22도까지 떨어졌다. 정전 사태와 인명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추위에 약한 바다거북도 수난을 겪고 있다.

현지 주민들과 동물전문가들은 바다거북 구조를 시작했다. 현지의 한 컨벤션센터가 바다거북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게끔 임시 보금자리를 제공했다.

구조 초반에는 일부 주민들이 커다란 바다거북을 품에 안고 한 마리씩 임시 보호소로 옮겼지만 개체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더 많은 주민과 봉사자들이 트레일러까지 동원해 바다거북 수십마리를 나르기 시작했다.

현재 임시 보호소로 옮겨진 바다거북은 3000마리 이상으로 추정된다. 임시 보호소가 된 컨벤션센터 측은 내부 온도를 15℃ 정도로 유지하는 등 막바지 구조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햄버거 구매 대기 4시간…한파가 전선줄에 만들어낸 '도깨비불'도
눈으로 뒤덮힌 시카고의 모습 [사진=EPA 연합뉴스]

눈으로 뒤덮힌 시카고의 모습 [사진=EPA 연합뉴스]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 지역에서는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승차 구매) 방식으로 햄버거를 사려는 차량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한파로 단수 상태가 지속되자 집에서 요리를 할 수 없게 된 시민들이 일제히 햄버거 가게로 몰려든 탓이다. 한 주민은 햄버거 하나를 사려고 4시간이나 기다렸다고 말했다.

텍사스주에 공장이 있는 삼성전자와 여타 반도체업체들도 피해를 입었다. 텍사스주 오스틴의 현지 신문 '오스틴 아메리칸-스테이츠먼'은 지난 16일 "공영 전력회사 '오스틴 에너지'가 전력을 많이 쓰는 삼성전자, 엔엑스피(NXP) 반도체, 인피니온 등 반도체 업체에 대한 전력 공급을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한파로 미국 내 500개 이상의 월마트 점포가 문을 닫았다. [사진=AP 연합뉴스]

한파로 미국 내 500개 이상의 월마트 점포가 문을 닫았다. [사진=AP 연합뉴스]

한파로 인한 공장 중단 사태는 반도체 업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포드와 GM 등 대형 자동차회사와 정유회사들도 잇따라 공장 가동을 멈췄고 월마트도 500개 이상의 점포 문을 닫았다. 곳곳에서는 제설 작업에 필요한 염화칼슘도 바닥났다. 현지 제설업체 사장은 "매일매일이 재난사태"라며 "길이 전부 얼음 투성이인데 염화칼슘을 구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일리노이주 한 도시에서 전기 변환장치에 고장이 생겨 전신주를 잇는 전기선에 불이 붙는 현상이 발생했다. [출처=유튜브 'Mixtorious' 캡처]

일리노이주 한 도시에서 전기 변환장치에 고장이 생겨 전신주를 잇는 전기선에 불이 붙는 현상이 발생했다. [출처=유튜브 'Mixtorious' 캡처]

일리노이주 한 도시에서는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전기 변환장치에 고장이 생겨 전신주를 잇는 전기선에 불이 붙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관련 영상이 SNS 등에 공유하면서 "무섭다" "심령 현상을 보는듯 하다"는 의견이 잇따르기도 했다.
3개주 제외한 미국 전 지역 눈 쏟아져
폭설로 도로와 승용차가 눈에 파묻혔다. [사진=AP 연합뉴스]

폭설로 도로와 승용차가 눈에 파묻혔다. [사진=AP 연합뉴스]

이번 강추위로 지난 15일 텍사스주를 포함한 미국 25개주에 한파 경보가 발령됐다. 25개주 지역 주민은 미국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1억5000만 명에 달한다. 3개주를 제외한 미국 전역에서 눈이 쏟아졌다. 특히 앨라배마·오클라호마·켄터키·텍사스 등 7개주는 비상 재난 사태를 선포했다. 발전 시설이 멈춰 18개주 550만 가구에 전력 공급이 끊기는 정전 사태도 발생했다고 CNN은 전했다.

미국 기상청은 남부 지역을 강타한 겨울폭풍이 북동부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번 맹추위가 오는 20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현지에선 피해 규모가 1조 원대가 넘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기록적 한파로 인해 중단된 전력, 수도 공급을 복원하려면 며칠이 더 걸릴 것이라며 재난에 대비해 줄 것을 당부했다.
추위에 그대로 노출된 노숙자 [사진=AP 연합뉴스]

추위에 그대로 노출된 노숙자 [사진=AP 연합뉴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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