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번 빅스텝으로 北核 제거는 환상…바이든, 단계적 접근할 것"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측근인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사진)가 “한두 번의 ‘빅 스텝(big step)’으로 북핵을 완전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단계적(step-by-step) 접근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북한 비핵화 과정은 적어도 5~10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자누지 대표는 미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정책국장(1997~2012년)을 지내며 당시 외교위원장이었던 바이든 대통령 등을 보좌한 아시아 전문가다. 2014년부터 아시아 전문 싱크탱크인 맨스필드재단 대표를 맡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정책과 대(對)중국 전략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자누지 대표를 지난 27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새로운 대북전략을 채택하겠다’고 했다. 어떤 내용일까.

화상 인터뷰 중인 프랭크 자누지 대표.
화상 인터뷰 중인 프랭크 자누지 대표.
“비핵화 과정은 단계적이고 장기적이란 걸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식의 ‘톱다운(하향식)’ 접근은 안 할 것이다. 정상회담을 완전 배제하진 않겠지만 그에 앞서 북한이 충분한 ‘비핵화 착수금’을 내놓을지, 반대급부로 뭘 원할지 알기 위해 체계적인 실무협상을 우선할 것이다. ”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가능성은 없나.

“전혀 없다. 미국과 한국, 국제사회의 목표는 북핵의 완전 제거다. 유일한 질문은 거기에 어떻게 도달하느냐다. 존 볼턴(트럼프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은 한두 번의 ‘빅 스텝’으로 거기에 도달할 수 있고, 12개월 안에 그 과정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환상이었다. 내가 아는 이 분야 최고 전문가는 시그 프리드헤커 전 로스앨러모스 핵연구소장과 로버트 칼린 스탠퍼드대 연구원인데, 그들은 북한 비핵화에 적어도 5~10년은 걸릴 것으로 본다.”

▷단계적 접근을 택하면,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할 때 미국도 제재 완화를 할까.

“미국의 상응조치가 부분적 제재 완화일 수도 있지만 다른 것일 수도 있다. 가령 북한 정권에 상당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도 상응조치가 될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대단한 선물을 줬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김정은은 반대급부로 거의 아무것도 내놓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분명 핵무기를 포기할 의지가 있다’고 했다. 북한이 정말 핵을 포기할까.

“현재 북한은 핵무기 포기보다 보유가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북한의 결정이 영원불변인 건 아니다. 어렵지만 불가능해보이는 것을 가능한 일로 바꾸는 게 외교관들의 일이다. 북한의 생각을 바꿀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핵무기 보유의 고통을 키우는 ‘최대 압박’이고 다른 하나는 핵무기 포기의 매력을 높이는 제재 완화, 원조, 외교적 지원이다. 외교관들이 할 일은 북한 비핵화를 위해 최적의 조합을 찾는 일이다.”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면 ‘비핵화 레버리지’를 잃을 수 있지 않나.

“맞다. 이 때문에 스냅백(제재 복원) 조항을 두는 것도 방법이다. 북한이 제때 비핵화 약속을 안 지키면 자동으로 제재를 원상복구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미·북 대화 재개의 출발점으로 싱가포르 선언을 제안한 건 어떻게 보나.

“북핵 문제를 풀려는 외교관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어떤 문서든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싱가포르 선언이 충분히 멀리 가진 못했지만 딱히 반대할 만한 내용은 없다. 나는 오히려 미국이 싱가포르 선언뿐 아니라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 2000년 조명록(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빌 클린턴 대통령의 공동성명, 2005년 9월 6자회담 공동성명도 지지하면 좋겠다. ”

▷종전선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원래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한반도가 ‘전쟁 상태’라는 사실은 북한에 핵무기 유지 핑곗거리를 주고, 점진적으로 북한을 바꿀 북한 주민과 국제사회의 접촉에 장애물이 되며,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에 종전선언이 유용할 수 있다. 다만 종전선언을 하면 그다음날이라도 당장 평화가 올 것이란 생각은 난센스다.”

▷대북전단금지법은 어떤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정보의 자유를 강력 지지하지만 풍선에 전단을 넣어 국경으로 날려보내는 걸 규제하는 법이 반드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건 아니다. 한국인들이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아시아 차르(최고 책임자)’인 커트 캠벨 인도·태평양조정관이 최근 D10(민주주의 10개국 모임)과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가 주축이 된 협의체)를 강조한 건 어떻게 봐야 하나.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보다 민주주의 규범을 더 강조할 것이다. 우리는 홍콩에서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기본적인 민주주의 규범이 침해되는 걸 봤다. 이는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은 ‘반중(反中) 전선’ 성격 때문에 쿼드 가입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이 쿼드에 참여해야 할까.

“한국인들이 결정해야 할 일이다. 다만 내가 바이든 대통령과 캠벨 등에게서 들은 중국 정책의 핵심은 ‘미국이 중국과 경쟁하는 분야와 협력을 추구하는 분야가 있지만 누구도 봉쇄 전략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에 ‘쿼드 참여’를 요구하고 이 문제로 한·미 동맹의 틈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있다.

“쿼드 참여에 대한 한국의 답이 ‘예스’가 아니라면 미국이 공개적으로 쿼드 참여를 요청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동맹의 경계는 서로 합의하는 것이다. 강조하고 싶은 건 한·미 동맹은 한반도를 넘어서는 중요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개발도상국을 돕는 주요 원조국이고 시장과 경제적 기회를 전 세계로 확대하는 나라이자, 미국과 함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싸우고 있다. 30년 전 한·미 동맹의 95%는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모든 면에서 훨씬 강해졌고 한·미 동맹도 변하고 있다. 한·미 동맹은 이제 북한 침략 억제만큼이나 (아시아)지역과 국제 평화·안보 촉진에 중요한 틀이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