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대 석좌교수에게 듣는다

美경제 하반기 정상 궤도 가능성
코로나 끝나도 'K자 양극화' 심화

美·中 양자택일 압박 심한 韓·日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 나서야

보편적 기본소득 정책에 반대
의료·교육·디지털 접근성 보장을
제프리 삭스 "부양책으론 위기 못 끝내…美 백신보급 속도에 경제회복 달렸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1조9000억달러 규모 추가 부양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런 조치로는 최악의 위기를 끝낼 수 없습니다. 오직 백신만이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종결시키고 경제를 정상화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 석학인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사진)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대규모 재정 지원이 실업 문제 등을 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란 지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테스트를 확대하고 백신을 서둘러 보급하는 방역 조치가 경제를 살리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했다.

삭스 교수는 “올 하반기엔 미국 경제가 서서히 정상 궤도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백신 공급 및 공중 보건정책이 성공하지 못하거나 내부 정치 위기가 심화할 경우 회복 시기가 뒤로 밀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글로벌 경제도 회복세를 보이겠지만 문제는 개발도상국에까지 백신이 보급되려면 최소 1년 이상 걸린다는 점”이라며 국가별 경기 회복 속도에 작지 않은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경제는 코로나19 사태 종료 이후에도 K자형 양상을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삭스 교수는 “작년 위기 속에서도 디지털에 익숙하고 고등교육을 받은 계층은 일거리가 늘고 자산 역시 불어났다”며 “사회적 약자들만 호된 재정적 불안과 실업에 시달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공부문이 포용적 정책을 확대하지 않는 한 팬데믹 이후에도 이런 경향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외교 및 경제정책에 대해선 인색한 평가를 내렸다. 삭스 교수는 “트럼프의 모든 대외정책이 불규칙했고 비이성적이었으며 반과학적이었다”며 “미국으로선 이번 정권 교체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 정부와 달리 대외지향적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무엇보다 국제협력에 방점을 둬야 한다”며 “팬데믹 종식뿐만 아니라 글로벌 녹색 성장, 디지털 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서도 여러 국가와 손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중은 즉각 고위급 회담을 시작해야 한다고도 촉구했다. 그는 “양국은 공동의 이익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세계 경제를 위해 바람직하고 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한국과 일본이 미·중 사이에서 중재에 나서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도 조언했다. 삭스 교수는 “미·중 간 신냉전이 위험하고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미국 정부에 설명해야 한다”며 “결국 한·일 양국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기술과 교육, 인구구조 등 측면에서 글로벌 선두권이란 이유에서다. 다만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려면 역내 또는 국제적 충돌을 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심각한 내부 환경 위기를 해결하고 유럽, 주변 아시아, 미국과 개방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게 지속 발전의 전제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삭스 교수는 “한·중·일은 하나같이 경제 및 기술 강국”이라며 “3개국이 서로 긴밀하게 연계돼 있는 점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3개국이 어두웠던 전쟁의 역사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상호 이익이 무척 클 것”이라며 “동북아시아는 미국·유럽과 더불어 명실상부 세계 3대 기술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에는 작년 최종 타결에 성공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잘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RCEP은 한국과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5개국 및 아세안 10개국이 가입한 초대형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삭스 교수는 “RCEP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라며 “이웃 국가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증진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만하다”고 했다.

보편적 기본소득 정책에 대해선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어느 사회든 건강하고 능력 있는 성인들이 정부 보조금에 의지해 살아가기보다 일하는 모습을 기대할 것”이라며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기본소득을 나눠주는 것보다 국가 재정이 해야 할 일은 훨씬 많다”고 지적했다. 다만 “사회 구성원이 각자 얼마를 버느냐에 관계없이 의료와 교육, 디지털 접근성 등은 기본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 제프리 삭스는…
28세때 하버드 최연소 교수…볼리비아 '인플레 해결사'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28세에 같은 학교의 최연소 정교수로 임용됐다. 《빈곤의 종말》 《커먼 웰스: 붐비는 지구를 위한 경제학》 《지속가능한 발전의 시대》 등 큰 화제를 모은 책을 저술한 세계적 석학이다. 1986년부터 5년간 볼리비아 대통령의 경제 교사를 맡아 연 4만%대 인플레이션을 10%대로 끌어내렸다. 옛 사회주의 국가이던 폴란드에 시장경제를 성공적으로 도입한 이력으로도 유명하다.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와 함께 미국 경제학계의 3대 슈퍼스타로 불린다. 2002년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새천년개발목표(MDG)를 세웠으며, 지금까지 유엔의 지속가능개발 사업을 돕고 있다. 타임지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매년 이름을 올리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린 고금리 처방을 강력 비판해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