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잇달아 차량용 반도체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는 최근 세계적으로 품귀 상태인 데다 한동안 공급이 늘어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여 자동차 업체들의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반도체 기업 “가격 최대 20% 인상”

"반도체값 20% 올리겠다"…車업계 '울상'
2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 점유율 2, 3위 업체인 네덜란드 NXP와 일본 르네사스, 5위 기업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이 거래업체들과 제품가격 인상 협상에 들어갔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이들 세 업체는 2019년 기준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NXP와 ST마이크로가 반도체 가격을 10~20% 인상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르네사스는 차량 각 기능을 제어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을 비롯해 차량·서버·산업용 반도체 가격을 최대 20% 올려달라고 거래업체에 요청했다. 도요타자동차 계열사인 덴소, 독일 폭스바겐에 제품을 납품하는 부품사 콘티넨탈 등이 이 같은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니혼게이자이는 “차량용 반도체 기업들은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비용이 급증해 반도체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NXP와 르네사스 등은 대부분 생산시설이 없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업체)다. 이들은 대만 TSMC와 UMC, 삼성전자 등에 생산을 맡긴다. 하지만 작년부터 파운드리 업체들은 차량용 반도체 대신 5세대(5G) 통신기기나 PC·스마트폰·서버용 반도체 생산에 집중해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동차 수요는 크게 줄었고, 재택근무 등에 필요한 각종 전자기기 수요는 폭증해서다.

차량용 반도체가 다른 반도체에 비해 단기간 대량 생산이 쉽지 않고 마진이 적은 것도 이유다. 최근 자동차 수요가 회복세지만 파운드리 기업들은 여전히 차량용 반도체를 후순위로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품귀 현상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줄면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 18일엔 아우디가 고급 모델 생산을 연기하고 직원 1만 명을 단기 휴직시켰다. 아우디는 올 1분기 생산량 감소 폭을 1만 대 이하로 유지하는 게 목표다. 아우디 브랜드를 산하에 둔 폭스바겐그룹은 올 1분기 그룹의 총 자동차 생산량이 약 10만 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포드는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공장 문을 닫았고, 독일 자를루이 공장은 다음달 19일까지 폐쇄하기로 했다. 피아트크라이슬러(FCA)는 캐나다 온타리오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지프 브랜드의 멕시코 공장 재가동 시기도 늦추기로 했다. 도요타는 미국 텍사스주 공장에서 감산 계획을 발표했다. 닛산은 이달 노트의 생산량을 줄인다.

전문가들은 차량 반도체 품귀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파운드리업계가 단기간에 차량용 반도체 생산량을 늘릴 수 없고, 자동차기업이 필요한 물량을 맞추기 위해 공급업체를 여럿 유지하기도 어려워서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가격이 10% 인상되면 자동차 생산원가는 약 0.18% 오르고 영업이익은 1%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