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겨냥한 미국의 제재를 기회로 미국 및 영국 정부와 연계해 NEC와 후지쓰 등 자국 통신회사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5세대(5G) 이동통신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일본 통신사의 입지를 회복해 차차세대 통신 규격인 6G 시장을 선점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가 미국·영국 정부와 각각 일본 기업의 5G 기기 및 기술 보급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11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일본과 영국 정부는 통신기기 사업자를 다양화하기 위해 양국 정부가 연대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사회기간시설을 1~2개 업체에만 의존하면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영국 정부의 문제의식이 협력의 계기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력은 세계 시장 점유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NEC와 후지쓰 등 일본 통신회사들의 열세를 만회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요미우리는 분석했다. 5G를 포함해 세계 통신기지국 시장은 화웨이(점유율 34.4%)와 스웨덴 에릭슨(24.1%), 핀란드 노키아(19.2%) 등 3개 회사가 약 80%를 과점하고 있다. 5G 이동통신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세계적으로 관련 수요는 늘어나고 있는데, 화웨이를 빼고 나면 공급 회사가 1~2개 기업에 불과한 상황이다.
日, 화웨이 빈자리 노린다…美·英에 '5G 세일즈'
지난해 5월부터 미국 정부는 화웨이의 이동통신 기지국 통신장비를 구입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제재를 가하고 있다. 작년 9월부터는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제품 판매를 금지시키고 동맹국에도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화웨이 제재 이후 영국 정부는 “통신기기 업체의 선택지를 늘리겠다”며 작년 11월 NEC와 공동으로 5G 통신망 구축 실험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미국 정부와도 작년 하반기 양국 정부의 국장급 협의 이후 5G 통신장비 조달처를 다변화하는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역시 영국과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NEC와 후지쓰는 일찌감치 통신망 사업에서 중국 제품을 배제하려는 미국 정부 방침을 지지한 만큼 화웨이를 대체할 유력 후보가 될 것으로 일본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미국 및 영국 정부와 5G뿐 아니라 6G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협의도 벌이고 있다. 이를 토대로 5G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6G 시장의 주도권도 선점하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미·중 무역전쟁과 화웨이 제재를 이용해 일본 정부가 세계 통신시장에서 반사이익을 노리는 모양새다.

화웨이의 점유율을 빼앗아 에릭슨, 노키아를 추격해야 하는 삼성전자로서는 일본 정부의 자국 통신기기 업체 밀어주기가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세계 통신기지국 시장에서 중국 통신장비업체 ZTE에 이어 5위(점유율 4.6%)에 그치고 있다.

NEC와 후지쓰는 자체적으로도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NEC는 일본 최대 통신사인 NTT와 자본·업무제휴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갖춘 기지국 개발에 착수했다. 후지쓰도 일본 시장을 넘어 해외 사업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도키타 다카히토 후지쓰 사장은 해외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NTT, NEC와 제휴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선택지의 하나”라며 부인하지 않았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