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범민주진영 인사 50여명이 6일 오전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더기 체포됐다. 지난해 6월 홍콩보안법이 시행된 후 최대 규모다. 미국인 변호사까지 체포된 것으로 파악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우치와이 전 주석을 포함해 홍콩 제1야당인 민주당 인사 최소 7명과 공민당의 앨빈 융 주석, 베니 타이 홍콩대 교수 등이 홍콩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이와 함께 온라인매체 스탠드뉴스에 7일 내 국가보안법 관련 서류를 제출하라고 통지했다.

체포된 이들 가운데 미국 국적의 변호사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공영방송 RTHK 등에 따르면 이날 경찰 30여명이 로펌 '호쓰와이 앤드 파트너스'의 사무실을 급습했으며, 이 로펌 소속 사무 변호사인 미국 시민 존 클랜시를 국가전복 혐의로 체포했다. '호쓰와이 앤드 파트너스'는 범민주 진영 인사 다수의 변호를 맡고 있으며, 클랜시 변호사는 지난해 입법회 예비 선거를 도운 단체인 '파워 포 디마크러스'의 회계를 맡고 있다.

이날 오전의 무더기 체포 현장은 야권 인사들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생중계되기도 했다. 체포된 이들은 지난해 9월6일로 예정됐던 입법회(의회) 의원 선거를 두 달 앞둔 7월 11~12일 5개 지역구별 야권 단일 후보를 정하는 비공식 예비 선거를 조직하고 참여해 '국가 전복'을 꾀한 혐의를 받는다.

홍콩 정부는 당시 해당 예비 선거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에 참여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예상을 깨고 61만여명의 유권자가 참여했다. 홍콩 시민들이 6월30일부터 전격 시행된 홍콩보안법에 대해 무언의 저항 의사를 보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해당 예비 선거는 2019년 11월 구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범민주진영이 후보 난립과 표 분산 등을 막고 입법회 의원 선거에서 보다 많은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처음으로 홍콩 전역에서 실시한 것이다. 야권은 이를 통해 입법회 전체 70석 가운데 처음으로 과반을 차지하겠다는 구상으로 '35-플러스' 캠페인을 펼쳤다.

예비선거 직후인 7월31일 홍콩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입법회 의원 선거를 1년 연기한다고 기습 발표해 결국 선거는 열리지 않았다.

SCMP는 이날 경찰의 무더기 체포작전은 홍콩보안법 시행 후 최대 규모라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 6개월간 홍콩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된 이는 반중 매체 빈과일보의 사주 지미 라이와 학생 민주화 운동가 아그네스 차우를 비롯해 총 40명이었다.

홍콩보안법은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홍콩보안법이 홍콩의 자치권과 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중국을 상대로 거센 비판과 제재를 쏟아내왔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무더기 체포 소식에 조 바이든 미국 차기 행정부의 국무장관 지명자인 앤서니 블링컨은 "범민주진영 활동가들의 전면적인 체포는 보편적 권리를 용감히 지지해온 이들에 대한 공격"이라며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중국의 민주주의 탄압에 맞서 홍콩인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 홍콩민의연구소의 부대표인 청킴화 전 홍콩이공대 교수는 RTHK에 이날 대규모 체포는 홍콩 정부가 반체제 인사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어떤 방법도 동원할 준비가 돼 있으며 이제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비 선거나 여론조사 자체가 홍콩보안법을 포함해 홍콩의 어떤 법도 위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식의 체포는 대중에게 정부가 구실을 찾아내는 한 어떠한 일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고 침묵하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