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과 사를 미셸 EU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30일(현지시간) 화상으로 EU-중국 투자협정에 관해 협의하고 있다.  /사진=EPA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과 사를 미셸 EU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30일(현지시간) 화상으로 EU-중국 투자협정에 관해 협의하고 있다. /사진=EPA
유럽연합(EU)과 중국이 30일(현지시간) 거의 7년 만에 투자협정 체결에 합의했다. 양측 기업의 상대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한층 높아지게 됐다. EU는 이미 대외시장 개방 수준이 높기 때문에 이번 협약으로 유럽 기업들의 중국시장 진출이 더 자유로워진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미국의 조 바이든 새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 미국의 전통적 우방과의 우호를 높이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된다.

AFP통신 등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사를 미셸 EU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30일(현지시간) 화상으로 EU-중국 투자협정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트위터를 통해 "중국과 투자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원칙적으로 끝냈다"며 "보다 균형 잡힌 무역과 더 나은 사업 기회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EU와의 투자협정은 양측의 투자자들에 더 넓은 시장과 더 나은 기업환경을 제공할 것"이라며 "이번 합의는 개방에 대한 중국의 결의와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는 실질적으로 유럽기업들의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전례 없이 확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 등은 전했다. 유럽 기업들은 전기차, 민간병원, 부동산, 광고, 해양산업, 통신 클라우드 서비스, 항공운송 예약시스템·지상업무 등의 분야에서 중국내 영업을 할 수 있게 된다.

공정경쟁을 위한 여건도 개선된다. 중국 진출시 중국기업과 합작투자사를 차려야 하는 등의 조건은 폐지된다. 이와 함께 유럽 기업의 임직원은 중국 계열사에서 조건없이 3년까지 근무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은 외국기업으로부터 강제 기술이전을 금지하고 보조금 지급을 투명화하는 한편, 국영기업의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에는 기후변화 노동권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중국은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준수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기로 약속했다.

이날 합의는 2014년 1월 협상이 개시된 지 거의 7년 만에 이뤄졌다. 앞으로 투자협정이 체결되고 시행되기까지는 수개월 내지 1년이 걸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회원국은 물론 EU 의회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EU와 투자 협정 체결을 위해 지난 7년간 공들여왔다.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중국 기업 제재에 EU 회원국들도 동참하도록 압박해 왔던 터라 중국은 올해 EU와 투자 협정 체결이 미국의 포위망 탈출을 위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총력전을 펼쳐왔다.

중국으로선 액면 그대로 보면 손해보는 장사일 수 있다. 하지만 바이든 차기 행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중국이 내민 손을 EU가 잡은 셈이 돼서 중국으로선 동맹을 앞세운 미국의 예봉을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됐다는 진단이다.

한편 EU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심각한 경기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일환으로 '차이나 머니'를 앞세운 중국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선 연말(12월31일)까지 EU 의장국을 맡는 독일이 자국 기업의 중국 영업 확대를 위해 합의를 서둘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중국 시장 개방 확대로 수혜를 입는 기업으로 다임러(벤츠), BMW, 폭스바겐, 알리안츠, 지멘스 등 독일 기업들이 다수 꼽힌다.

하지만 EU 내에서 '코로나19 중국 책임론' 등 중국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은데다 중국과 EU 간의 깊은 유대감이 아닌 이해 관계를 따져 협상이 체결됐다는 점에서 실제 실행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과 EU 간 투자협정은 EU 27개 회원국과 EU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EU 의회는 강제노역 금지 등 노동자 보호를 위한 규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과정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EU 동맹 강화를 추진하면서 중국의 코로나19 책임 공방을 제기하고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 위구르족 인권 문제 등을 공론화할 경우 EU 의회 통과가 힘들어질 수 있다.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은 칼럼을 통해 "EU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전 중국과 협약을 맺은 것은 실수"라고 비판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트럼프대통령과 달리 우방(유럽)과 경쟁자(중국)을 명확히 구분해 중국을 압박하는 전략을 취하려 했으나 이번 협약으로 이런 전략 실행이 어려워졌고, 미국의 EU에 대한 통상 압박이 트럼프 행정부 시절만큼 강해질 수 있다는 예측이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