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내놓는 전기차, 업계가 긴장하는 이유 [오춘호의 글로벌 뷰]
애플이 22일 전기자동차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보도가 전세계 자동차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애플이 2014년 '타이탄 프로젝트'로 자율주행차 개발을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마진이 적고 자본집약적인 사업에 애플이 쉽게 뛰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전기차는 그동안 배터리의 경쟁으로 여겨왔다. 애플도 새 전기차에는 신 개념의 배터리를 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관측한다. 하지만 배터리 못지않게 중요한 게 소프트웨어다. 테슬라나 중국의 니오,샤오펑도 전기차 업체이면서도 소프트웨어 업체로 불리길 선호한다. 소프트웨어가 주력인 애플이 전기차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들보다 더 강력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자동차보다 다른 컨셉의 이동수단을 제시할 수있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특히 속도와 안전성을 동시에 통제할 수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것이라고 한다. '디지털 현기증'의 저자 앤드루 킨은 "애플 스마트폰의 성공은 하드웨어 속에서 소프트웨어를 잘 결합시킨 소프트웨어 제품을 만든 것"이라며 "엔진 없는 전기차를 자동차라고 부를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도요타, GM도 소프트웨어에 주력

자동차 소프트웨어의 바람은 이미 전세계 자동차 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도요다 아키오 일본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최근 일본 자동차공업회 회장 자격으로 스가 요시히데 정부의 탄소중립과 휘발유차 신차 판매 금지 정책을 비판했다고 한다. 이런 정책들이 "자동차 업계의 사업모델을 붕괴시키고 말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도요다 사장은 자동차를 전기차를 만든다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지않는다며 자동차 시장을 전기자동차로 이행하는 것에 반대한다고도 했다. 도요다 사장의 이 발언은 '지금이야말로 100년만에 한번 오는 대변혁의 시대'라며 여기에 올라타야한다는 평소의 지론과 사뭇 다르다. 그는 수년전부터 이제부터 자동차회사는 소프트웨어가 기반이며 도요타도 소프트웨어 회사가 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그동안 내연기관을 생산하고 팔던 기업이 소프트웨어 회사로 바뀌는 건 그의 말대로 비즈니스 모델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힘든 작업일지 모른다. 도요타가 아직 전기차를 양산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과 맞닿을 수있다. 하드웨어 업체가 소프트로 전환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속내를 털어놓은 것이기도 하다.

GM도 지난달 전기차를 위한 소프트웨어 인력 3000명을 2021년 봄까지 채용한다고 발표했다. 마크 루스 GM 사장은 소프트웨어 인력 충원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전기차 분야에서 GM이 앞서기 위해 필요한 소프트웨어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다짐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한꺼번에 소프트인력을 채용한 건 GM으로선 매우 드문 사례다. 이들에겐 재택근무의 기회도 보장한다고 한다. 그만큼 GM도 소프트인력의 시급성을 깨닫고 있다.

SW는 차 업계의 양날의 검

전기차의 선두주자인 테슬라도 지금 주로 채용하는 인력은 소프트웨어 인력이다. 테슬라는 전기차를 판매하면서 소프트웨어의 위력을 가장 먼저 경험한 업체이기도 하다. 테슬라 전기차는 이미 미국에서 수차례 대형사고를 냈으며 한국에서도 지난 9일 화재사고로 귀중한 인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비상시에 문이 열리지 않아 차에 탑승한 사람이 나오지 못한 사고로 배터리에서 전원 공급을 받아 문을 여닫기 때문에 일견 배터리 결함으로 보지만 대부분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의 결함으로 보고 있다.

보잉이 첨단기종으로 내놓은 737맥스가 2018년 10월과 지난해 3월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참사로 3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도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이 기종에서 소프트웨어의 중대한 결함이 보고된 건 오래 전의 일이지만 보잉은 늑장대처를 하다 사고를 키운 것으로 전해진다.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보잉이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모빌리티 업계에서 소프트웨어는 없어선 안될 핵심 요소이면서 신중히 다뤄야 할 칼날과 같은 것으로 변했다. 애플이 내놓는 소프트웨어에 차업계들이 긴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애플의 전기차 개발 소식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그건 이상한 일"이라고 한 것도 그런 긴장의 반증이기도 하다. 일본 전자업체 소니도 새로운 컨셉의 전기차를 내놓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기존의 자동차업계는 물론 전자,소프트업체들이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면서 시장의 새로운 판도를 예고하고 있다.

HP와 파나소닉 노키아 델 등 하드웨어에서 한때를 풍미한 업체들이 결국 자신만의 소프트웨어를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산업의 가치는 결국 소프트웨어의 힘에서 나온다는 킨의 지적이 갈수록 맞아 떨어지고 있다.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