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합성 사진. 호주 군인이 아프가니스탄 어린이의 목을 베려 하고 있다. [사진=트위터 캡처]
지난달 30일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합성 사진. 호주 군인이 아프가니스탄 어린이의 목을 베려 하고 있다. [사진=트위터 캡처]
무역과 안보 등 거의 전 영역에 걸쳐 긴장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중국과 호주 양국 사이에 또 하나의 갈등 요소가 등장했다.

지난주 호주 군인이 아프가니스탄 어린이의 목에 단검을 들이대는 합성사진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트위터에 올렸고 이에 호주 총리가 중국에 사과를 요구했지만 중국이 무대응으로 일관한 것이다. 나아가 중국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원지가 중국 우한이 아니라 호주를 통해 유입됐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호주 특정해 '코로나 진원설' 재조망

[사진=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 캡처]
[사진=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 캡처]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7일(현지시간) "중국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Coronavirus)가 중국 밖에서 발생했고 호주 등 타 국가들로부터 냉동식품 수출을 통해 우한 시장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실었다.

데일리메일은 "중국 관영 매체 환구시보가 후난성의 한 시장에 지난해 외국으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입된 것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며 "중국 정부는 지난 10월 칭다오에서 발생한 코로나 감염을 추적한 전문가들이 냉동 대구 수입품에서 살아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샘플을 발견했을 때도 이 이론을 주장했다"고 알렸다.

중국 정부가 냉동식품 포장지를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해외에서 유입됐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인민일보는 지난달 25일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수입 냉동 식품과 포장을 통해 유입됐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또 자오 리젠 외교부 대변인 역시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가장 먼저 코로나 바이러스를 보고했지만 그것이 반드시 중국에서 바이러스가 발생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 최고 외교관인 왕이 국무위원도 이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발생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환구시보가 호주를 특정해 '코로나 진원설'을 재조망한 것은 최근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중국과 호주의 상황을 대변한 것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환구시보 보도는 자오 리엔 대변인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호주군에 대한 선전 이미지를 공유하면서 호주와 중국간 정치적, 경제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아프가니스칸와 중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어 호주군의 주둔이 중국에게는 탐탁치 않은 상황이다.

환구시보는 지난달 23일 기사에서 "미국의 가까운 동맹국인 호주가 최근 몇 년간 미국의 지역 전략의 전당으로 이용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호주를 상징하는 캥거루 그림이 미국의 상징인 독수리의 그림자를 투사하는 모습을 곁들였다.

중국·호주 갈등, 미중갈등 확장판

호주군의 사과를 촉구하는 풍자만화 [사진=글로벌 타임스 캡처]
호주군의 사과를 촉구하는 풍자만화 [사진=글로벌 타임스 캡처]
코로나 바이러스 진원지를 부정하면서 호주를 몰아붙이는 중국의 적대적 외교전략은 미·중 갈등의 확장판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임 기간 이어진 미국의 중국 때리기용 정책에 호주가 적극 호응하면서 중국과 갈등이 누적됐다. 실제로 호주는 2018년 미국이 구축을 시도한 중국 화웨이의 5세대(G) 이동통신 장비 보이콧 전선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참한 국가다. 이는 영국, 독일, 뉴질랜드 등이 화웨이 장비를 수용하는 결정으로 선회한 것과 다른 행보였다.

호주는 또 중국의 홍콩과 신장위구르 인권문제를 수시로 비판하는 한편 홍콩보안법에 위협을 느끼는 홍콩 시민들을 수용하는 비자를 검토하는 행동에도 적극 나섰다. 뿐만 아니라 호주는 중국 견제를 목표로 미국, 인도, 일본과 함께 '쿼드'(Quad)를 구성한데 이어 지난달 초 쿼드 인도양 합동 군사훈련에도 참여했다.

쿼드 인도양 군사훈련 이후 중국은 전방위 보복에 나섰다. 훈련 직후 중국은 당장 자국 상품거래상에게 호주산 블랙리스트를 전달했다. 면화, 소고기, 랍스터, 석탄, 구리와 같은 호주산 제품 수입을 제한했다. 호주산 보리와 와인에는 아예 각각 최대 76%, 212%의 반덤핑 관세를 물렸다. 중국으로의 수출 물량이 워낙 많았던데다 와인과 같은 최종 소비재의 경우엔 오직 중국하고만 거래하던 무역상이 많았기 때문에 중국의 무역보복 대상이 된 호주 산업들은 궁지에 내몰리게 됐다.

중국 "코로나 진원 중국 아닐 수도" 꾸준히 주장

하지만 호주에 코로나 진원설을 떠넘기려는 중국의 시도는 무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중국 매체는 호주 이외에도 이탈리아와 인도에서 코로나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연일 보도하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과 CGTN 등 중국 매체들은 독일 바이러스 학자 알렉산더 케쿨레의 인터뷰를 거론하면서 "케쿨레가 ZDF 방송에 출연해 세계에 퍼진 코로나19의 99.5%는 유전적으로 북부 이탈리아의 변이형(G 변이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며 "(이는)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이 아니라 이탈리아 북부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3월엔 자오리젠 대변인이 직접 나서 지난해 10월 우한에서 열린 세계 군인체육대회 미군 참가자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파했을 수 있다는 음모론을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퍼뜨린 바 있다.

중국은 또 이탈리아나 미국 등 외국에서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더 일찍 감염이 시작됐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 과학자들은 이미 코로나19가 인도에서 시작됐을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케쿨레는 이같은 주장이 나오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중국 언론이 이탈리아의 G 변이형 출현을 프로파간다(선전)에 이용하고 있다"며 "코로나19는 중국에서 기원했으며 발병은 아마도 초기에 은폐됐을 것"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WHO 역시 "식품이나 식품 포장지를 통해 코로나19에 감염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발표한 바 있다.

마이크 라이언 WHO 긴급대응팀장은 지난달 브리핑에서 '코로나19가 중국 밖에서 처음 출현했을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은 매우 추론적"이라고 답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