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 13개국과 러시아 등 비(非)OPEC 10개 산유국 연합체인 OPEC+가 내년 1월 산유량을 현재보다 하루 50만 배럴 늘리기로 3일(현지시간) 합의했다. 당초 계획했던 ‘하루 200만 배럴 증산’에서 ‘소폭 증산’으로 선회한 것이다. 예상보다 수요 회복세가 더디자 공급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지만 시장에선 당분간 원유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어 국제 유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산유국 '소폭 증산'에 합의…국제유가, 7개월 만에 최고

공급 과잉 경계

로이터통신은 이날 OPEC+ 석유장관들이 내년 산유량을 결정하기 위해 화상회의를 열고 이같이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OPEC+는 내년 1월부터 감산 규모를 기존 하루 770만 배럴에서 720만 배럴로 조정할 계획이다. 하루 720만 배럴은 글로벌 수요의 7%에 해당한다.

OPEC+는 지난 4월 하루 970만 배럴 감산(2018년 10월 산유량 대비)에 들어간 이후 8월 감산량을 하루 770만 배럴로 줄였다. 내년 1월부터는 감산 규모를 하루 580만 배럴로 더 축소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요 감소 추세가 충분히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꺼번에 하루 200만 배럴 가까이 증산하는 것은 과잉 공급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소폭 증산으로 돌아선 것으로 해석된다.

OPEC+는 또 내년 1월부터 매달 회의를 열어 시장 상황을 평가하고 그 다음달 산유량 수준을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산유량 조정은 증산과 감산 두 방향으로 모두 이뤄질 수 있지만, 하루 50만 배럴 이하 수준에서 점진적으로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합의 소식에 이날 국제 유가는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4일 오후 4시 기준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내년 1월물 브렌트유는 전날보다 1.83% 오른 배럴당 49.60달러에 거래됐다. 4월 28일 배럴당 32.48달러로 바닥을 찍은 이후 가장 비싼 가격으로 손바뀜한 것이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1월 인도분도 전날보다 1.27% 오른 배럴당 46.22달러에 거래됐다.

에너지업계 지각변동

원유 수요 회복에 대한 기대가 조금씩 커지고 있지만 글로벌 가스·정유업체들은 여전히 코로나19 충격에 시달리고 있다. 이날 미국 셰브런은 내년 설비투자액을 140억달러로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당초 계획(190억달러)보다 약 26% 쪼그라들었다. 앞서 엑슨모빌도 내년부터 2025년까지 연간 설비투자액을 당초 계획보다 50억~100억달러 줄이겠다고 했다. 피에르 브레버 셰브런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설비투자 축소는 앞으로 5년간 유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편 원유가격 공시기관인 S&P글로벌 플래츠가 글로벌 벤치마크 유종인 브렌트유 가격을 산정하는 데 미국산 원유를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날 보도했다. 검토 대상은 북해산 원유 가격 중 현물 인도일이 정해진 ‘데이티드 브렌트’ 가격이다. 이는 금융시장의 리보(런던 은행 간 금리),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처럼 국제 유가 시장에서 가격 지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북해 브렌트 유전들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어 새로운 가격 산정 방식을 마련할 필요가 커졌다고 플래츠 측은 설명했다.

이를 두고 국제 원유 시장에서 미국의 부상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이 40년간 지속된 자국산 원유 수출 금지를 2015년 해제한 이후 주요 원유 수출국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얘기다. WSJ는 2022년 3월께부터 새로운 가격 산정 방식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