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과학자 피살에 군사 대응보다 핵프로그램 고도화에 무게
나탄즈 핵시설 피폭에 이어 이란 요인 경호에 취약점 드러나
서방언론, 이란 핵과학자 암살 뒤 이란 '핵위협 점증' 전망

이란 핵프로그램을 이끈 과학자 중 하나인 모센 파크리자데가 27일 테헤란 외곽에서 테러로 사망한 데 대해 이란에 우호적이지 않은 서방 언론은 이란 정부가 핵프로그램을 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란에 적대적인 논조의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 "27일 벌어진 살해로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후퇴하겠지만 이들의 핵개발 노력으로 적성국(미국,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위협은 점증하게 됐다"라고 해설했다.

이어 "핵과학자가 살해됐지만 미국과 그 우방은 이란의 핵개발 야욕을 묶으려는데 여전히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이란의 '핵위협'을 부각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조정관은 "파크리자데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큰 역할을 했다"라면서도 "그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과 핵물질 생산과는 큰 관련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죽음이 이란의 핵프로그램에 타격이 되겠지만 핵무기 개발 자체가 크게 후퇴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신문은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파기한 이란 핵합의를 되살리려는 조 바이든 당선인에게 이번 테러가 상황을 꼬이게 하는 돌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WSJ는 또 이번 테러에 이란군과 정부가 배후로 지목한 이스라엘에 어떤 수위로 대응해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해석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이란 전문가 카림 사드자드푸르는 이 신문에 "이란으로선 경제를 살리려면 핵합의에 완전 또는 부분적으로 복귀하는 데 동의해야 한다"라며 "동시에 정권의 자존과 억지력을 만회하려면 이번 살해를 보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란 정부는 미국이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지 1년 뒤인 지난해 5월부터 3개월 간격으로 우라늄 농축 농도·비축량, 원심분리기의 성능 등과 관련한 핵프로그램을 제한·동결한 핵합의의 조건을 단계적으로 지키지 않았다.

영국의 더타임스는 핵과학자 테러 직후 이란 의회가 29일 우라늄 농축 농도를 현재 4.5%에서 20%로 높여야 한다는 결의안을 가결했다는 점을 들어 이란이 이번 암살을 계기로 핵프로그램을 더 서두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란 내부에서도 강경 보수파를 중심으로 핵프로그램을 가속해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랐다.

이란 헌법기구인 국정조정위원회 모센 레자이는 "이란 원자력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연결된 핵시설 내 CCTV 운용을 중단하고 사찰 의무를 축소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란 언론에 따르면 보수파가 다수인 이란 의회가 "이란의 영광스러운 핵산업을 되살리는 게 이번 암살에 대한 최선의 대응이다"라는 성명을 냈다.

서방언론, 이란 핵과학자 암살 뒤 이란 '핵위협 점증' 전망

이란이 강력한 보복 대응을 천명한 가운데 수위가 어느 정도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군사적 대응보다는 핵프로그램의 고도화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올해 1월 이란 군부 요인인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미군의 드론 공격에 폭사했을 때 이란은 이라크 내 미군기지 2곳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보복, 전쟁 위기가 고조됐다.

그러나 미사일을 발사하고 2시간 뒤 테헤란 부근 상공에서 우크라이나항공의 민항기를 혁명수비대가 대공미사일로 격추하는 예상밖 참사가 벌어지면서 이란군의 추가 대응과 미국의 재보복이 흐지부지됐다.

외부의 압박에 '키사스'(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대응을 주로 구사하는 이란의 전략을 고려하면 군인인 솔레이마니 사령관 때와 달리 핵과학자의 피살엔 핵프로그램과 관련된 조처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핵합의 복귀를 모색하는 바이든 당선인의 집권에 앞서 이란이 협상력을 높이는 효과도 볼 수 있다.

아울러 이번 사건은 미국, 이스라엘 등 적성국의 공작에 이란군과 정부가 취약하다는 사실도 드러냈다.

이란의 핵프로그램을 주도하는 주요 과학자의 피살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다, 7월 우라늄 농축 시설인 나탄즈 핵시설 단지의 건물이 외부 공격으로 폭파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핵심 과학자가 수도 테헤란 부근에서 테러를 당했다.

테러 당시 파크리자데는 방탄 처리된 승용차에 타고 있었고, 무장 경호원이 탄 차량이 동행했다는 점에서 이란이 노출한 허점은 작지 않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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