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토리, 시마추에 대항 공개매수 승리해 승기
日기업 변했다 '자사 이익 위해서라면 진흙탕 싸움 불사'
순자산 1800억짜리 회사를 1600억에?…日기업 저평가도 부각
"생존 위한 진흙탕 싸움"…일본경제 축소판인 홈센터 쟁탈전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일본 7위 홈센터(생활용품·인테리어 전문 대형마트) 시마추를 놓고 벌이는 기업 쟁탈전이 일본 산업계에서 단연 화제다. 일본 산업의 구도와 과제, 이를 벗어나려는 기업들의 몸부림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일본 경제의 축소판이어서다.

홈센터 2위 업체 DCM홀딩스가 시마추를 인수하기로 합의하고 주식 공개매수를 실시했는데 '일본의 이케아' 니토리가 30% 높은 가격으로 이 회사를 가로챈 것이 쟁탈전의 전말이다. DCM홀딩스의 공개매수에 동의했던 시마추 경영진이 지난 12일 니토리의 품에 안기기로 입장을 바꾸면서 판세는 사실상 굳어졌다. 하지만 DCM홀딩스가 포기하지 않고 공개매수 기간을 한 달 연장하면서 시마추 쟁탈전은 일본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인수합병(M&A) 드라마가 됐다.

M&A를 여전히 도둑질 취급하는 일본 재계에서는 경영진끼리 이미 합의한 공개매수에 대항 공개매수를 거는 자체가 극히 이례적이다. 지난해 도시바가 반도체 장비업체인 뉴플레어테크놀로지에 공개매수를 실시하자 일본 광학업체 호야가 대항 공개매수를 시도한 것이 몇 안되는 사례다. 호야는 도시바보다 20% 높은 가격을 제시하고도 적대적 M&A에 부정적인 주요주주들 때문에 패배했다. 니토리의 시마추 쟁탈이 일본 경영진들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자사 이익을 위해서라면 일본 경영진들도 진흙탕 싸움을 불사하게 됐다는 것이다. 스즈키 가즈노리 와세다대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대항 공개매수가 기업의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경영인들을 싸움꾼으로 만드는 건 영업환경의 급격한 변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재택근무 정착으로 소비행태가 급변하면서 일본 소매업체들은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기감에 떨고 있다. 욕실·부엌용품부터 원예용품, 건축자재까지 파는 홈센터는 코로나19 이후 매출과 이익이 가장 많이 늘어난 업종이다. 소비자들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집을 꾸미는데 관심이 높아진 덕분이다. 막대한 이익을 바탕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선 업체가 생겨난 반면 경쟁에서 탈락하는 업체도 늘었다. DCM홀딩스가 시마추에 눈독을 들인 것도 이 회사를 인수하면 업계 1위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소비행태의 변화는 기업들에 동종업계의 몸집불리기를 넘어 이종산업간 융합까지 요구하고 있다. 식료품, 생활용품·인테리어, 가구 등 분야별 전문점이 발달한 일본에서는 '전문점이 다른 분야의 전문점을 인수해 더욱 전문성을 강조하는' 업계 재편이 두드러진다. 가전용품 양판점인 야마다홀딩스가 가구 전문업체인 오쓰카가구를 인수해 주택과 관련한 상품 대부분을 취급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니토리가 창업 이래 처음으로 초대형 M&A를 시도하는 것도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니토리는 일본 기업으로서는 드물게 디지털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덕분에 올 상반기 사상 최대 이익을 기록했다. 다음 과제는 도심부 진출이었지만 이미 포화상태인 일본 유통업계에서 점포부지를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점포의 90%가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에 집중된 시마추는 하늘이 준 기회였다. 니토리 아키오 회장은 13일 기자회견에서 "시마추는 도쿄의 1급 부지에 매장을 갖고 있어 점포당 매출도 니토리의 2배"라고 말했다.

시마추 쟁탈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일본 산업의 또다른 현주소는 기업 저평가다. 시마추는 8월말 현재 자기자본비율이 76.5%에 달하는 우량기업이지만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배에 불과하다. DCM홀딩스가 시마추의 순자산(1815억엔)보다 낮은 1600억엔(약 1조6937억원)을 인수가격으로 제시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지난 20년간 미국 상장사가 7000개에서 4000개로 줄어드는 동안 일본 상장사는 3800개에서 4000개로 오히려 늘었다. 일본 산업계가 그동안 얼마나 사업재편에 무심했는지 보여주는 통계다. 일본 상장사 가운데 PBR이 1배가 안되는 기업 비율이 49%에 달한다. S&P500지수 상장기업의 비율은 16%다. 스즈키 히데타카 물류경제연구소 주임연구원은 요미우리신문에 "소비자의 수요가 다양해지면서 업태를 넘나드는 재편이 활발해 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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