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사진)이 곧 출간되는 회고록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흑인 대통령의 탄생에 위협을 느낀 백인들의 두려움을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또한 유색인종에 대한 반감과 외국인 혐오 등을 정략적으로 끌어들여 지지층 결집에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자신이 취임할 때 전임자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정권인수에 적극 협력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국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 행태를 우회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CNN은 12일(이하 현시시간) 오는 17일 출간되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회고록 '약속의 땅'(A PROMISED LAND)의 주요 내용을 입수해 보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 회고록에서 "백악관에서 '나'라는 존재는 내부의 공포, 자연스러운 질서를 방해했다는 느낌을 촉발한 것 같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그래서 위법한 대통령이라는 주장이 퍼지기 시작할 때 트럼프는 이를 잘 알고 있었다"며 "백악관의 흑인에 겁먹은 수백만의 미국인들에게 트럼프가 인종적 우려를 해소시킬 묘약을 약속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첫 흑인 대통령의 탄생으로 대표되는 유색인종의 부상에 백인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트럼프 대통령이 공략해 지지층을 끌어모았다는 의미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공화당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뜻을 같이하며 인종주의를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8년 대선 당시 공화당 내 강경보수 세력 '티파티'의 지지를 기반으로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부통령 후보에 나선 것을 거론하며 "페일린을 통해 공화당 주변을 맴돌던 외국인 혐오와 반(反)지성, 망상적 음모론, 흑인과 유색인종에 대한 반감이 중앙에 나서기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겨냥해 제기했던 출생지 논란 역시 첫 흑인 대통령에 대한 백인들의 우려에 호소하려는 공화당의 시도에 불과하다고 피력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그런 점에서 트럼프나 (공화당 하원의장이었던) 존 베이너나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이나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사실 유일한 차이라면 트럼프는 거리끼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 경합 주(州) 가운데 한 곳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유세 지원에 나선 모습. 사진=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 경합 주(州) 가운데 한 곳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유세 지원에 나선 모습. 사진=연합뉴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 행태를 에둘러 지적하기도 했다. 자신의 대통령 당선 이후 부시 전 대통령의 정권 인수인계 과정에 대해 높이 평가하며 현재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인수에 협조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을 저격한 것이다.

그는 "제도에 대한 존경 때문이거나 부친으로부터의 가르침 때문이거나 자신의 정권인수 과정에 대한 나쁜 기억 때문이거나 아니면 그냥 기본적인 품위 때문이거나 부시 대통령은 모든 걸 순조롭게 하려고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며 "때가 되면 후임자에게 똑같이 해주자고 스스로 다짐했다"고 적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 당선인에 대해서는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대통령으로 일할 준비가 돼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내가 너무 어리다고 걱정하는 이들을 안심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조(바이든)는 품위 있고 정직하고 충성스럽다는 것"이라며 "그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고 상황이 어려워질 때 나는 그를 믿을 수 있었다. 실망하지 않을 거였다"고 덧붙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2006년 '아버지로부터 받은 꿈들'(Dreams From My Father), 2008년 '담대한 희망'(The Audacity of Hope)에 이어 세 번째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