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정부가 야권 입법회 의원 4명의 의원 자격을 박탈한 데 대한 대응으로 야권 의원 전원이 12일 사퇴했다. 홍콩 정부의 조치가 중국 중앙정부의 지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민주당과 공민당 등 범민주파 야권 의원 15명은 이날 입법회에 사퇴서를 제출했다. 우치와이 민주당 대표는 "모든 권력이 행정장관에게 집중됐고 삼권분립은 파괴됐다.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전체 70석 가운데 19석을 차지하고 있던 야당 의원 전원이 물러나게 돼 입법회는 친중파 의원들로만 채워지게 됐다. 야권에서는 입법회가 친중 거수기로 전락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앞서 홍콩 정부는 11일 입법회 의원 4명이 국가 안보를 해쳤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박탈했다. 같은 날 중국 최고 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가 홍콩 의원 자격에 '애국심' 요건을 넣기로 결정한 직후 이뤄진 조치다.

전인대 상무위는 홍콩 입법회 의원이 독립을 주장하거나, 외부 세력과 결탁하거나 기타 국가 안보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를 해 중국과 홍콩에 충성하지 않으면 자격을 상실하도록 하는 '홍콩 입법회 직책 유지에 관한 결정'을 채택했다. 자격 상실 판단과 발표 권한은 홍콩 정부가 갖는다. 이번 결정은 지난 6월 상무위가 전격 통과시킨 홍콩 국가보안법의 후속 조치다.

전인대 상무위가 미국 대선 직후 이런 결정을 한 것은 미·중 사이에서 홍콩 인권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정식 취임하기 전에 홍콩 관련 현안을 빨리 정리하려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시진핑 주석이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에게 ‘외국이 아무리 압박해도 공산당에 대한 이견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든의 당선으로 양국 관계를 다시 설정할 기회가 주어졌으나, 중국의 홍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면서 개선 가능성이 크게 줄었다는 분석이다.

서방 국가들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도미닉 랍 영국 외무장관은 전날 홍콩의 조치 직후 “홍콩의 자치권에 대한 공격이며 중국의 국제 평판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럽연합(EU) 의장국인 독일도 ‘깊은 우려’를 표명.

반면 중국 관영 영문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홍콩 야권 의원들의 집단 사퇴가 '정치적 책략'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들이 사퇴해도 입법회가 제 기능을 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중국 정부가 이런 상황을 다 대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