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심사에 3분, 지급에 1초. 이 과정에 관여하는 사람은 0명'.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인 중국 핀테크업체 앤트그룹은 소액대출 광고에 이런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대출 심사에 사람이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공지능(AI)이 신용 조회 등 모든 과정을 처리한다는 의미다.

앤트그룹은 이번 IPO로 조달할 예정이었던 자금의 상당 부분을 AI와 블록체인 등 첨단기술 연구개발(R&D)에 쓴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중국 금융당국이 전격 상장 중단 조치를 내리면서 최대주주 마윈의 'AI 패권 꿈'도 물거품이 됐다는 분석이다.
조달자금 70% R&D로 계획했으나
앤트그룹은 5일 상하이와 홍콩 증권거래소에 상장할 예정이었다. 두 거래소에서 상장 심사를 통과했고, 공모 신청도 정상적으로 마쳤다. 그러나 3일 밤 상하이거래소가 앤트그룹 상장 무기한 보류를 전격 공고했다. 앤트그룹은 이어 홍콩거래소에 상장 중단 안내를 올렸다.

금융당국이나 거래소 모두 시원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4일 "앤트그룹의 상장을 늦추는 것은 금융소비자의 권익과 자본시장의 장기적 건전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기업은 법률 준수와 사회적 책임 등 각 방면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앤트그룹이 속해 있는 알리바바그룹의 창업자이자, 현 앤트그룹 지배주주인 마윈이 최근 한 금융포럼에서 금융당국이 위험 관리를 내세워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금융회사를 감독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 상장 중단이라는 조치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앤트그룹은 "금융회사가 아니라 기술기업이며 기술기업에 적합한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금융당국이 '미운 털'이 박힌 마윈의 앤트그룹에 쉽게 상장 재개를 허가해주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이에 따라 AI, 블록체인, 사이버보안 등에서 대규모 투자를 계획했던 앤트그룹의 전략도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됐다.

앤트그룹은 투자계획서를 통해 상장으로 조달할 340억달러(약 38조원) 규모의 자금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큰 40%를 신기술 개발과 혁신에 쓰겠다고 밝혔다. 또 30%는 현재의 주력 사업인 모바일 결제와 소액대출, 자산관리 등의 디지털경제 시스템 업그레이드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R&D에 70%인 240억달러(약 27조원)을 쏟아붇는다는 얘기다. 앤트그룹의 지난해 매출(1206억위안·약 20조5000억원)을 훌쩍 넘는 액수다.

앤트그룹은 매년 매출의 8%가량을 R&D에 지출하고, 직원 1만6000여명 가운데 1만여명이 개발자일 정도로 신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해 왔다.

앤트그룹은 AI와 블록체인이 향후 사업 확장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AI의 예로 든 번역기술은 앤트그룹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때 든든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또 소상공인들에게 블록체인 기술을 제공해 거래 안전성을 높여주면 보다 많은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예측이다.

앤트그룹은 이미 모회사인 알리바바 거래 실적, 모바일 결제 서비스인 알리페이 사용 현황 등 사용자의 소비 성향을 분석해 독자적인 신용등급 시스템을 확립했다. 은행 대출이 까다로운 중국에서 이런 시스템은 소비자의 대출 편의성을 높이면서도 채무 불이행 위험을 줄여 앤트그룹이 소액대출 1위로 올라서는 원동력이 됐다. 앤트그룹은 또 블록체인에선 '앤트체인'이라는 브랜드로 50여개 관련 기술을 상용화했다.

앤트그룹의 이런 전략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미국의 아마존이 걸었던 길과 비슷하다. 아마존은 고객의 데이터 관리 기술을 기반으로 클라우드, AI, 블록체인 등을 발전시켜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앤트그룹의 모기업인 알리바바는 클라우드 시장에서 아시아 1위, 세계 3~4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거세지는 상장 중단 후폭풍
앤트그룹은 또 조달 자금의 10%를 글로벌 협력 강화에 쓸 계획이었다. 앤트그룹의 매출 95%가 중국 본토에 집중돼 있다는 점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약점으로 보는 부분이었다. 이 역시 상장 연기로 난항을 겪게 됐다.

앤트그룹의 상장 중단은 또다른 후폭풍도 낳고 있다. 홍콩에선 일반공모에서 이미 납입된 1조3100억홍콩달러(약 190조원) 규모의 증거금에 대한 이자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경제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홍콩 개인투자자들은 앤트그룹 청약을 위해 총 5192억홍콩달러(약 75조원)의 대출을 받았다. 이날 홍콩거래소가 증거금을 환불할 예정인데, 납입 이후 5일 동안 이자만 최대 2억8400만달러(약 430억원)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홍콩거래소에서 그동안 상장 직전에 중단된 사례는 청약 수요가 부족한 경우밖에 없었다. 상장 자격이 안되는 기업은 심사 과정에서 걸러졌다. 이런 사례가 처음이어서 혼란이 커지는 가운데 증권사들은 "상장 중단 위험을 투자자들에게 고지했기 때문에 이자는 지급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앤트그룹은 "향후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만 밝힌 상태다.

앤트그룹의 모기업 알리바바의 주가는 폭락했고, 마윈의 개인 재산도 3조원 이상 증발했다.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알리바바 주가는 3일(현지시간) 전 거래일보다 8.13% 급락한 285.57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한편 이번 앤트그룹의 상장 중단 조치는 중국의 '규제 리스크'를 부각시켜 중국에 진출하려는 글로벌 금융사들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정부는 개방을 통해 자국 금융시장을 육성시키겠다는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겨 왔다. 블룸버그통신은 "'화요일의 역행'이 중국 금융 시장에 먹구름을 드리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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