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경쟁자를 두고 있는 유형경제 시대가 저물고 1위만 살아남을 수 있는 무형경제 시대가 도래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가 최근 발간한 ‘무형경제 0>1’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무형 자산을 기반으로 한 기술기업이 산업계 주류로 등장하면서 승자 독식 시대가 열렸다. 10여 년 전 미국 아마존과 2위 사업자였던 이베이 간 매출 격차가 2.5배였는데 지금은 30배 넘게 벌어진 게 대표적인 예다. 동영상서비스(OTT) 업체인 넷플릭스는 아마존프라임 디즈니플러스 등 신규 경쟁자의 진입에도 불구하고 60% 넘는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네이버가 검색 시장을, 카카오가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반면 자동차 철강 화학 등 전통산업 분야에선 압도적 1위 사업자를 찾기 어렵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도요타(10%) 폭스바겐(8%) 포드(5%) 등이 분점하고 있다.

이는 시장이 커질수록 이익이 증가하는 ‘수확체증의 법칙’ 때문이란 해석이다. 전통산업에서 자본·노동력을 일정 수준 이상 투입할 경우 생산력이 되레 떨어지는 것(수확체감의 법칙)과 반대다.

무형경제에선 ‘규모의 경제’가 온전히 작동할 수 있다. 특별히 소모되지 않는 소프트웨어나 플랫폼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계비용이 ‘제로(0)’다. 보고서는 “당장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최대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면 결국 이익을 독식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가 늘수록 효용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도 무형경제의 특징이다.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다. 예컨대 페이스북 사용자가 1억4000만 명에서 14억 명으로 10배 늘었을 때 기업 가치는 40억달러에서 2160억달러로 50배 넘게 뛰었다. 자물쇠(록인·lock-in) 효과도 주목할 만하다. 일정 규모의 사용자를 확보해도 경쟁사로 빠져나가면 소용이 없어서다. 애플이 자체 생태계를 조성해 충성 고객을 확보한 게 자물쇠 효과를 노린 사례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