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와 충돌…英내부서도 반발

EU관세 따르는 북아일랜드에
본토와 동일한 규제 적용

기존 탈퇴협정 무력화
보수당 강경파·前총리들도 반대

"노딜 땐 코로나보다 충격 커"
최근 파운드화 가치 급락
최근 영국에선 전·현직 총리들 간에 때아닌 신문 기고 논쟁이 벌어졌다. 지난달 보리스 존슨 총리가 유럽연합(EU)법을 대체할 ‘국내시장법(The internal market bill)’ 입법을 추진한 게 발단이 됐다. 존슨 총리가 텔레그래프에 “국내시장법은 일자리와 성장, 무역을 보호하고 영국의 통합을 추구할 것”이라고 주장하자 며칠 뒤 보수당 출신 존 메이저 전 총리와 노동당 출신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선데이타임스에 공동 기고한 글에서 “존슨 총리가 추진하는 국내시장법은 EU와의 무역협상을 어렵게 하고 영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훼손할 것”이라며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국내시장법을 발의하면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에 급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에 정치권은 물론 EU까지 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이 법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기존 브렉시트 합의문을 사실상 무력화해 EU의 관세를 피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4년간 지속돼 온 EU 탈퇴의 향방을 한순간에 바꿀 만한 파급력을 지닌 것이다. 국내시장법이 존슨 총리의 주장처럼 영국 경제를 보호할지, 반대로 영국이 아무런 협정을 맺지 못한 채 EU를 탈퇴하는 사실상 ‘노딜’ 브렉시트를 초래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보다 더 센 충격을 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국내시장법 강행한 존슨 영국 총리…'노딜 브렉시트' 가나

EU 협상 난항…‘교역 혼란 불가피’
국내시장법과 관련된 논란을 이해하려면 우선 지난 1월 말 브렉시트 단행의 근거가 된 EU 탈퇴 협정부터 살펴봐야 한다. EU 탈퇴 협정은 브렉시트 전환 기간, 분담금 정산, 상대국 국민의 거주 권리 등 ‘이혼 조건’에 관한 내용을 담은 국제조약이다. 법적 구속력도 있다. 영국과 EU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부분은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국경 문제다. 영국이 EU를 떠나면 북아일랜드 역시 다른 영국 지역과 마찬가지로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탈퇴한다. 그러면 과거 북아일랜드 내전 시절처럼 국경을 엄격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EU 탈퇴 협정은 영국과 EU 사이에 이른바 ‘두 개의 국경’을 세우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았다. 북아일랜드를 포함한 영국 전체가 브렉시트 이후 EU 관세동맹에서 탈퇴해 독자적인 관세체계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에 서로 다른 관세제도가 적용돼 법적인 관세 국경이 생긴다.

이에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법적인 관세 국경을 무력화하는 대신 영국 본토와 아일랜드 사이에 실질적인 관세 국경을 세우기로 했다. 따라서 영국 본토에서 아일랜드로 들어오는 모든 상품은 북아일랜드에 진입하는 시점에 관세를 물게 된다. 아울러 북아일랜드는 EU 단일시장에 남아 EU의 규제를 적용받는다. 이를 통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자유로운 상품 이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지난 1월 말 EU에서 탈퇴한 영국은 곧바로 EU와 무역협정 등 미래 관계 협상에 착수했다. 양측은 최근 8차 협상까지 마쳤지만 공정경쟁환경과 영국 수역에 관한 접근권 등에 대한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이에 따라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양측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적용받는다. 현재 무관세로 자유롭게 오가는 상품에 앞으로 관세가 부과되고 통관 절차가 적용되는 만큼 양측 간 교역에 혼란이 불가피하다.
전직 총리도 모두 반대…논란 거세
그러자 영국 정부가 들고나온 게 국내시장법이다. 양측이 무역협정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에 대한 일종의 보호망이다. 국내시장법은 브렉시트 전환 기간 이후 잉글랜드·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웨일스 간 국내 교역에 관한 규제를 담았다. 영국은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뒤 EU법 적용을 받았다. 이젠 EU에서 탈퇴했으니 1707년 제정했던 무역법을 부활해 재적용하겠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문제가 된 건 법안 내용이다. 이 법에 따르면 전환 기간 이후 북아일랜드에서 영국 나머지 지역으로 건너가는 상품에는 아무런 통관 확인 절차가 적용되지 않는다. 북아일랜드는 영국 영토지만 EU 탈퇴 협정에 의거해 EU의 관세체계를 따라야 하는데 이를 무시할 수 있게 된다. 또 영국과 EU가 새 무역협정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내년 1월부터 EU 탈퇴 협정 중 교역 관련 내용을 수정하거나 불복할 수 있는 권한을 영국 각료에게 부여했다.

아울러 상품과 서비스, 품질 기준 등을 영국 전체에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했다. 북아일랜드는 브렉시트 이후 EU 단일시장에 남게 되므로 EU 규제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국내시장법은 영국 전체에 동일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기 때문에 북아일랜드에 적용될 EU 규제와 충돌이 불가피해진다. 특히 45조는 국내시장법이 국제법이나 기존 국내법과 부합하지 않더라도 효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국내시장법이 국제조약인 EU 탈퇴 협정과 어긋날 경우 국제조약을 무시하겠다는 얘기다.
코로나보다 무서운 노딜 브렉시트
EU 탈퇴를 지지하는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 사이에서도 비판이 커지고 있다. 보수당 의원 20여 명은 하원 최종 표결에서 기권했다. 테리사 메이 전 총리를 비롯해 전직 총리 5명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메이 전 총리는 “존슨 총리의 독단적인 법안 추진은 영국의 명성과 신뢰에 치명상을 입힐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존슨 총리는 “국내시장법은 EU에 좌우되지 않고 영국 전체의 통합성을 지키는 게 목적”이라고 밝혔다. 알록 샤르마 기업부 장관은 “국내시장법이 없다면 잉글랜드에서 생산한 자동차는 북아일랜드에서 더 비싸게 팔릴 수도 있다”고 거들었다.

영국 정부가 EU와의 협상에서 요구 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국내시장법을 앞세워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U는 영국 정부가 국내시장법 폐지 요구를 거절하자 국제 소송 등 법적 대응을 시작했다. 국내시장법은 하원의 수정 단계인 3독회제와 최종 투표를 통과해 상원으로 넘겨졌다. 이후 상원을 통과하면 여왕의 재가를 받은 뒤 효력을 발휘한다.

국내시장법 추진에 따라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파운드화 가치는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딜 브렉시트가 코로나19보다 영국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내다본다. 런던정경대는 코로나19로 인한 미래 국내총생산(GDP) 가치 감소율은 2.1%지만, 노딜 브렉시트로 인한 GDP 감소율은 5.7%로 예상했다.

■ 국내시장법 (The internal market bill)

영국이 유럽연합(EU)과 맺은 EU 탈퇴 협정을 무력화할 수 있는 법안. EU 탈퇴 협정에서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영토에 속하면서도 EU의 단일시장에 남아 EU의 관세 체계 등 규제를 따라야 하는데, 국내시장법은 이를 무시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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