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교황청이 자선기금을 이용해 고위험 파생상품에 투자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 바티칸 교황청이 불우이웃을 위한 기부금으로 조성된 5억2800만유로(약 7200억원) 가운데 일부를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미국 렌터카업체 허츠의 신용부도스와프(CDS)를 매입하는 데 쓴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CDS는 국가와 기업, 기관 등의 부도 위험을 따로 떼어내 사고파는 파생상품이다.

FT에 따르면 바티칸 교황청은 허츠가 2020년 4월까지 파산하지 않는 데 베팅했다. 허츠가 여행 수요 급감 여파로 미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한 것은 바로 다음달인 5월이었기 때문에 교황청은 대규모 손실 위험을 극적으로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고위험 파생상품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발언을 해온 바티칸 교황청이 이 같은 투자를 한 것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윤리적인 면에서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FT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CDS 관련 상품 투자에 대해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고 전했다.

이번 파생상품 투자는 2011~2018년 교황청 자금을 관리하는 바티칸 국무원 2인자였던 안젤로 베추 추기경이 재직하던 때에 이뤄졌다. 베추 추기경은 교황청을 둘러싼 각종 자금 스캔들의 핵심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2014년 세계 빈민 구호 등에 쓰이는 베드로 성금으로 영국 고급 부동산을 사들이는 데 깊이 관여한 사람으로, 당시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교황 개인 계좌까지 손을 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바티칸은 지난달 베추 추기경을 해임하고 교황 선출 투표권 등 모든 추기경 권한을 박탈했다. 하지만 그는 제기된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