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늘리며 코로나 대응…집콕 수혜
취임 후 M&A 50건…네슬레 업그레이드

네슬레 상반기 순이익 18% 급증
"재택소비 증가"…코로나 대응 성공
포트폴리오 다각화도 한 몫

의료기기·제약 CEO 출신 본색
 일러스트=허라미 기자  ramy@hankyung.com

일러스트=허라미 기자 ramy@hankyung.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였던 지난 2월 말, 네슬레의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슈나이더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일하는 한 직원이 그에게 사람들이 마트에서 식품 사재기를 하고 있는 사진 몇 장을 이메일로 보냈기 때문이다. 이를 본 슈나이더는 직감적으로 앞으로 ‘통제할 수 없는 큰일’이 닥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민 끝에 그는 전 직원에게 “모든 제품의 재고를 늘리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자”고 통보했고 네슬레는 다른 기업들보다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 기업들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혔지만 네슬레는 올해 상반기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18.3% 증가한 64억6000만달러(약 7조5517억원)를 기록하며 ‘집콕 수혜 기업’으로 순항하고 있다. 슈나이더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재택 소비가 더 가속화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의 진두지휘 아래 네슬레는 코로나발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100여 년 만에 네슬레가 처음으로 외부 영입한 최고경영자(CEO)인 슈나이더는 전통적인 식품회사였던 네슬레의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며 업그레이드하고 있다고 포브스가 최근 보도했다.
“코로나에도 명성 지킨 네슬레”
네슬레의 경쟁업체로 꼽히는 다농, 유니레버 등은 코로나19 여파로 최근 매출 하락 등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올해 실적 전망치도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네슬레는 올해 예상 매출이 작년보다 3% 이상 늘어날 것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치를 제시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슈나이더 CEO는 “코로나19로 전반적인 온라인 판매가 급증했으며 가정 내 식품 소비량도 폭증했다”며 “중국 사업이 회복세를 보이는 등 전반적인 글로벌 시장 상황을 볼 때 올해의 매출 목표치를 낮추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적 발표 및 전망을 통해 네슬레는 명성을 지키고 자신감을 보였다는 등 시장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네슬라 주가는 올 들어 5% 이상 올랐다.

최근엔 미국 바이오테크 기업 인수에 뛰어들었다. 식품 알레르기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에이뮨테라퓨틱스를 26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에이뮨테라퓨틱스는 지난 2월 신약 팔포지아가 땅콩 알레르기 치료제로는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화제가 된 헬스케어 전문업체다. 네슬레는 2016년부터 에이뮨테라퓨틱스에 4억7300만달러를 투자하면서 이미 25.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CEO 취임 후 M&A만 50건
네슬레는 2011년 자회사인 네슬레건강과학을 설립한 이후 2013년 의료용 식품업체 팜랩, 2017년 비타민 업체 아트리움 등 크고 작은 인수합병(M&A)을 통해 헬스케어 분야에 꾸준히 투자해왔다. 사업 다각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건 2017년 슈나이더가 CEO로 부임하면서부터다. 슈나이더는 의료기기·제약 업체인 프레지니우스의 CEO를 지낸 이 분야의 전문가로 꼽힌다.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추세 등을 반영해 향후 큰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부문을 팔고 다른 사업에 주력하기 위한 차원에서 공격적인 포트폴리오 정리에 나섰다. 네슬레의 가공육 부문을 매각하고 채식(비건) 브랜드인 스위트어스를 인수해 대안식품 개발에 들어갔다. 2018년엔 미국의 과자사업 부문을 이탈리아 페레로에 28억달러에 매각했다.

지난해 피부건강 관리 사업을 100억달러에 매각했고 생명보험 부문도 15억달러에 팔아치웠다. 지난해 말엔 하겐다즈 등 미국 아이스크림 사업을 영국 합작사인 프로네리에 40억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프로네리는 2016년 네슬레가 유럽 사모펀드 PAI파트너스와 지분 50 대 50으로 설립한 합작사로 유럽 30개국의 아이스크림 사업을 관리하고 있다. 슈나이더가 CEO로 취임한 후 성사시킨 크고 작은 M&A는 50건에 달한다. 그는 “M&A를 통해 네슬레는 더 높은 성장과 이윤, 건강과 지속 가능성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현장 목소리 귀 기울이는 리더십
네슬레는 최근 환경보호 캠페인에 주력하고 있다. 슈나이더 CEO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세계에서 플라스틱 등 일회용품 사용이 폭증하는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사실 네슬레는 제품 포장 때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환경단체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아왔다. 슈나이더는 2025년까지 현재 포장 용기를 100% 재활용품으로 대체하거나 이를 재사용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2025년까지 천연 플라스틱 사용을 3분의 1까지 줄이는 등 환경보호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네슬레의 이 같은 선제적인 움직임은 다른 식품기업들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네슬레는 약사이자 화학자였던 창업주 앙리 네슬레가 1866년 설립한 회사를 모태로 하고 있다. 이후 여러 M&A를 통해 종합식품업체로 성장했다. 본사는 스위스 브베에 있으며 스위스 상장사 중 시가총액 1위의 대기업이다. 네스카페·커피메이트(커피), 페리에·베라(물), 네스퀵·네스티(음료), 킷캣·마일로·롤로(스낵) 등 다양한 브랜드의 1만여 개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187개국에서 임직원 29만1000명이 일한다.

1965년 독일에서 태어난 슈나이더는 스위스 세인트갈렌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미국 하버드비즈니스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독일어와 영어, 프랑스에 능통하며 꼼꼼하고 섬세한 편이지만 결정을 내릴 때는 과감하다는 평이다. 생산공장을 자주 찾아 작업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직원들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최근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세계 직원들을 다독이는 메시지를 보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저는 제 자신에게 늘 자문합니다. 우리 회사가 안전한 일터인가요?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 곳곳에 철저한 자체 방역 시스템을 갖췄고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이를 끊임없이 점검합니다. 저는 여러분과 늘 함께 있습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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