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이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사진 = KBS 뉴스 캡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이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사진 = KBS 뉴스 캡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이 18일(현지시간)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연방대법원은 이날 성명을 내고 긴즈버그 대법관이 췌장암 전이에 따른 합병증으로 워싱턴에 있는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긴즈버그는 2009년 췌장암 수술을 받았고, 2018년 폐암 그리고 지난해 췌장암 등 총 5차례나 암과 싸웠다. 올해는 간에서 암 병변이 발견돼 항암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2016년 대선 당시 인터뷰에서 공공연하게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사기꾼(faker)라고 칭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각을 세웠다. 그는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를 거쳐,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인 1993년 여성으로서는 두번째로 연방대법관으로 임명됐다. 무려 27년이나 연방대법관으로 재직한 셈이다.

그는 취임 후 여권 신장에 힘썼다. 남성 생도의 입학만 허용하던 버지니아군사학교에 여성을 받거나 아니면 주 정부의 예산 지원을 포기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미국 연방대법관에 몇 명의 여성이 적당한가라는 질문에 "9명"이라고 답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또 사형제도의 제한적 허용에 찬성했다. 긴즈버그가 연방대법관으로 재임하는 동안 지적 장애가 있거나 18세 미만의 범죄자에 대해 주 정부가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성소수자나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본인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소수의견을 내 이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냈다.

앞서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 시절엔 생물학적 의미가 강한 섹스(sex) 대신 사회적 가치를 담은 젠더(gender)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도 유명하다. 이후 젠더라는 용어가 일상화됐다.

긴즈버그는 이런 이력을 통해 미국에서 '진보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특히, 여성과 젊은이들 사이에서 록스타와 같은 인기를 누렸다. 젊은이들은 긴즈버그의 이름 영문 이니셜인 'RBG'에 미국 인기 래퍼 노토리어스 B.I.G의 이름을 합쳐 '노토리어스 RBG'라고 부르며 열광했다. 긴즈버그의 삶을 다룬 영화와 다큐멘터리도 최근 몇년 새 속속 개봉된 바 있다.

그간 긴즈버그의 건강상태는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대법원의 이념 지형이 보수 5대 진보 4로 나뉜 상황에서 그가 복귀하지 못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어서다. 대법원의 이념 지형은 보수 쪽으로 기울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긴즈버그도 이러한 문제를 의식한 듯 은퇴를 미루며 대법관 자리를 지키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긴즈버그의 별세로 새로운 대법관 임명 문제가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 대선까지 6주밖에 안남은 만큼, 긴즈버그의 자리에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인사를 지명할지 아니면 대선까지 공석으로 둘 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별세 소식에 미 정치권에서도 애도 메시지가 잇따랐다. 미네소타주에서 대선 유세 연설 중 긴즈버그 대법관의 별세 소식을 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그는 놀라운 삶을 이끌었다"며 조의를 표했다. 다만 후임 대법관 임명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도 "매우 슬픈 소식"이라고 애도했다. 이어 "새 대법관은 미 대선 이후 선출되는 새 대통령이 선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