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생일을 '대통령 마르코스의 날'로 지정하는 법안, 하원 통과

필리핀에서 시민 혁명으로 쫓겨난 독재자 고(故)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3일 일간 인콰이어러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필리핀 하원은 전날 마르코스의 고향인 일로코스 노르테주(州)가 고인의 생일인 9월 11일을 '대통령 마르코스의 날'로 명명하고 공휴일로 지정하는 법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투표에 참여한 의원 197명이 찬성했고, 반대는 9표에 그쳤다.

또 1명은 기권했다.

이에 대해 현지 인권단체 '카라파탄'의 사무총장인 크리스티나 팔라베이는 성명에서 "이 법안은 살인자, 약탈자, 범죄자의 이미지를 탈색하려는 것으로 피해자들에게 심각한 불명예"라고 비판했다.

유페미아 컬라맛 하원의원도 "살인자이자 국고 약탈자를 기린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면서 "이는 우리 역사에 대한 중대한 모독"이라고 지적했다.

필리핀서 독재자 마르코스 기리는 공휴일 지정 논란
1965년 대통령에 당선된 마르코스는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하며 장기 집권에 나섰다가 1986년 '피플 파워'(민중의 힘) 혁명으로 쫓겨났다.

이후 하와이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89년 7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계엄 시절 고문과 살해 등으로 수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마르코스 일가가 집권 당시 부정 축재한 재산은 100억 달러(약 11조7천억원)로 추산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필리핀 정부가 환수한 재산은 1천726억페소(약 3조9천억원)에 그친다.

이와 관련해 '사치의 여왕'으로 불리는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가 2018년 11월 최고 징역 7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보석을 허가받아 불구속 상태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기다리고 있을 뿐 마르코스 일가는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마르코스 일가는 오히려 정치적으로 재기하는 데 성공했다.

이멜다는 1992년 귀국해 대선에 도전했다가 쓴맛을 봤지만, 1995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3연임 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의 딸 이미는 일로코스 노르테주에서 3선 주지사를 역임한 뒤 지난해 상원의원으로 선출됐다.

주지사직은 이멜다의 손자인 매슈 마르코스 마노톡이 승계했다.

마르코스 2세도 일로코스 노르테주 주지사와 상·하원 의원을 거쳐 2016년 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지만, 여전히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2016년 대선에서 마르코스 일가의 지원을 받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같은 해 11월 마르코스의 국립 '영웅묘지' 안장을 허용했다.

/연합뉴스